우주 여행이 가능해진 어느 먼 미래 시점, 제국군은 어느 행성의 소유권 확보를 위해 사로잡은 포로들을 앞세워 하얀 외계인 무리들과 전쟁을 벌인다. 주인공이자 포로인 그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붉은 칼을 들고 동료와 함께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위기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저자 – 정보라
발행 – 아작 (2019)
페이지 – 312p
어느 짐작도 되지 않는 먼 미래 미지의 행성에서 제국군과 포로들은 외계인 무리와 한창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제국군이 이름 붙인 이들 하얀 외계인은 하얀색의 단단한 슈트를 입고 하얀색 막대로 하얀 빛을 쏘며 제국군과 포로 연합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붉은 칼의 주인이기도 한 그녀는 외계인들의 약점을 파악해 가까스로 전투의 승리를 이어간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든든한 동료 포로들이 함께 있었고, 나아가 이들은 외계인의 무기 사용법마저 습득하며 조금씩 전세를 역전해 간다.
하지만 작은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지금 이들이 있는 행성에는 사람 크기의 몇 배는 되는 검은 새가 날아다니면서 수시로 생명을 위협하거나,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생명체의 정기를 흡수하는 정체불명의 빛무리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와 동료들은 몇 차례 위기를 겪지만, 다행히 생존을 이어 나간다. 제국군은 그런 그들에게 외계인 기지의 중심부에 잠입해서 대장을 처치하면 자유를 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하는데. 제국군의 야망에서 벗어나 쉬고 싶었던 그녀와 동료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전투에서 획득한 외계인의 슈트를 입은 채 위장해서 적의 중심부로 향한다.
기지 잠입은 성공적이었고 외계인 병사들을 속여 대령을 만난 이들은 결국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우주선을 탈출하던 이들은 외계인 병사들이 모든 행동을 멈추고 대령의 죽음을 추모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적이 단지 야만적인 존재가 아니라 질서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발견하지만, 감탄할 사이도 없이 제국군의 본거지로 돌아오게 된다.
분명히 제국군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와 동료들은 눈앞에 다가온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다시 한번 싸울 준비를 한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등에 메고 있던 붉은 칼집에서 붉은 칼을 꺼내 들었고 물러서지 않기로 한다.
소설 리뷰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나선정벌(羅禪征伐)은 1654년과 1658년, 조선군이 청나라와 연합하여 러시아와의 군사 전쟁에서 승리한 실제 역사 사건이다. 전쟁의 이유는 청나라와 러시아의 영토 다툼에 있다. 두 강대국은 왕조의 부흥을 위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조선은 청나라의 파병 요구를 수락하여 참전하게 되었다.
조선 파병군을 지휘했던 함경북도 첨사 신유는 두 번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추가 진군을 요구하는 청군을 설득한 끝에 병사들을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왔다.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는 청군의 화장 요구를 거절하고 조선의 방식대로 땅에 묻어주었다고 하는데, 동료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전장에서 러시아군의 무기인 총에 관심을 보인 군인다운 모습은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에게 잘 반영되었다.
이 무렵 삼국의 힘의 균형은 소설에서 러시아 = 하얀 외계인, 청나라 = 제국군, 조선 = 포로로 매칭이 된다. 그녀와 동료들(조선군)이 외계인의 대령을 없앴지만(나선정벌), 여전히 제국군과 외계인 무리의 세력이 강했던 점 역시 당대 역사와 매칭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공을 들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정작 SF 장르로서의 참신함이나 소설로서의 재미는 떨어진다고 느꼈다. 먼저 과거 제국군은 실험실에서 검은 새를 탄생시켰고, 사람마저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주인공 그녀가 몇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도 복제된 그녀와 동료들이 몇 차례 나타났지만, 복제된 이들이 왜 나타난 건지 이유가 빠져있다.
복제 인간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아쉬웠는데, 예로 원본인 ‘그녀’가 있다면 복제된 그녀는 ‘그녀와 똑같이 생긴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동료는 이름이 있지만, ‘연녹색 치마의 여자’처럼 묘사하고 있어서 왠지 몰입도가 떨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추가로 소설의 제목인 ‘붉은 칼’은 그녀의 무기 1호이자 전의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매번 전투에서 그녀가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왜 그녀가 붉은 칼을 들고 있는지에 관한 이유가 없다. 강인한 주인공 여성이 붉은 칼을 휘두른다는 설정 자체는 꽤 매력 있지만, 인과관계를 알 수 없어서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그 존재감이 와닿지 않는다고 할까.
끝으로 소설에서 자세한 전투 장면 묘사가 많았던 것은 호평할 만한 재미의 요소이기는 하다. 하지만 복제 인간의 역할이나 등장의 이유, 벽을 뚫는 이스포베딘의 정체, 뜬금없이 등장하는 성적인 묘사, 전쟁 일색의 서사가 많은 점 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평점 : 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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