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보다 Vol 1 얼음 Vol 2 벽 리뷰

SF 보다 Vol 1 얼음 Vol 2 벽 리뷰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SF 보다>는 국내 SF 작가들이 특정 주제에 맞게 창조한 SF 단편을 모은 작품집 시리즈이다. 1권에서는 얼음과 2권에서는 벽과 관련된, 개성 있지만 낯선 이야기들로 각 시리즈가 구성되어 있다.


SF 보다 Vol 1 얼음
저자 – 곽재식, 구병모, 남유하, 박문영, 연여름, 천선란
발행 – 문학과지성사 (2023)
페이지 – 232p

SF 보다 Vol 2 벽
저자 – 듀나, 아밀, 이상화, 이서영, 이유리, 정보라
발행 – 문학과지성사 (2023)
페이지 – 188


Vol 1 얼음 줄거리 감상

<얼어붙은 이야기(곽재식)>
차를 운전하던 주인공 ‘나’는 트럭에 치여 죽을 뻔한 상황에 놓이지만 생사귀라는 존재가 나타나 시간을 멈추더니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선택지를 제시한다. 당연하게도 삶을 선택한 ‘나’에게 생사귀는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 설명을 이어간다.

‘나’는 생사귀에게 앞으로 치를 대가에 관해 자세하게 묻고 논의하다가 왜 오늘 운전해야 했는지 경위를 설명하게 된다. 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생사귀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을 궁금해하는 ‘나’에게 추가 설명을 이어가는데.

감상 – 마치 ‘나’와 생사귀가 벌이는 짧고 재미있는 콩트를 보는 듯했다. 시공간을 넘을 수 있는 생사귀가 인간인 ‘나’에게 깍듯한 모습이나 ‘나’의 자세한 운전 경위가 재미의 포인트라고 느낀다.

<채빙(구병모)>
세상에 존재하던 얼음이 녹으면서 인간의 터전도 대부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오래전 인류 문명의 기술로 탄생한 불사의 인간인 ‘나’는 어딘가에 몸이 붙어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의식은 남아 있었다.

후대의 인간들은 그런 ‘나’를 무슨 신의 존재처럼 여기면서 매번 와서 주문을 읊고 경배도 하는데. ‘나’는 몸이 고정된 채로 말없이 인간들이 생존을 위해 채빙을 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한다.

감상 – 소설은 1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에서 후대 인간들의 모습과 세상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서술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체 내용은 큰 굴곡 없이 평이해서 아쉬웠다.

<얼음을 씹다(남유하)>
120년 넘게 이어진 빙하기에 혹한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없이 척박한 삶을 살게 되었다. 식량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게 된 인류가 여태 버텨온 것은 죽은 사람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싸늘한 주검이 된 유리아의 어린 딸은 국가 법령에 따라 재활용해야만 했다. 하지만 유리아는 끝까지 딸을 지키려 하는데 국가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감상 – 죽은 사람을 먹는다는 설정은 잔인해 보이지만, 그래도 혹한이라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느낌이 정말 잘 살아 있다고 느꼈다. 이야기 전개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알렉이 거주하는 온실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이유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귓속의 세입자(박문영)>
어느 늦여름, 해빈의 앞에 손톱보다 작은 반투명 우주 생명체가 나타난다. 해치지 않겠다며 해빈을 설득한 생명체는 그녀의 귓속 거주자, 아니 세입자가 되는데. 자신이 살던 행성은 생명체가 모인 열기가 너무 뜨거워 많은 곳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결국 단독으로 행동하면서 냉기를 유지한다는 설명을 이어간다.

감상 – 해빈과 세입자의 기묘한 동거 관계는 흥미로웠지만, 열기를 위험하다고 느끼는 세입자의 입장이 해빈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운 느낌이었다. 만약 열기로 인해 뭔가 일이 벌어졌다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다.

<차가운 파수꾼(연여름)>
지구의 영구 동토층이 녹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날이 이어졌다. 노이가 거주하는, 오래되어 버려지다시피 한 아파트 지하 2층에서는 유독 영하의 냉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선샤인’의 존재가 있었다. 다른 주민인 이제트와 자신이 아파트를 수호한다는 주술사를 만난 노이는 직접 선샤인을 찾아가는데..

감상 – 선샤인의 캐릭터 설정이나 전체 이야기 흐름과 전개가 아쉬웠다. 아파트 지하의 냉기로 인해 녹아가던 동토층이나 지구의 기온에 스펙타클한 일이 일어났다면 좋았겠다고 느낀다.

<운조를 위한(천선란)>
축사에서 일하는 운조는 수의사가 된 일과 평소 원장이 시키는 일에 환멸을 느끼고 문득 마거릿의 연구소를 찾는다. 운조는 연구소에서 부재중인 그녀의 흔적을 찾았지만, 사고로 알 수 없는 연기를 마시는데. 정신을 차린 운조는 자신이 외계 행성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감상 – 외계 행성에서 낯선 존재들과 만난 운조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본 이야기에 연결되는 앞뒤 내용이나 인물들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자세한 원리나 과정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Vol 2 벽 줄거리 감상

<아레나(듀나)>
도시철도 공사장에서 난데없이 적색 지층이 발견되면서 남한은 고립된 상태에 빠진다. 인구의 1/3이 적사병으로 갑자기 죽은 가운데, 소수의 인간은 병에 의한 초능력자 ‘알파히어로’로 각성하는데. 히어로들이 만든 여러 개 팀은 각자의 목적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감상 – 히어로 설정을 했다면 화끈한 액션이 나오거나 변이 존재, 믿었던 아군의 배반이나 갈등 상황이 있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아밀)>
나윤은 어린 시절 신동으로 촉망받던 피아니스트 지망생이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멀리 미국으로 음악 유학을 왔지만, 오히려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학생이 많은 것을 보고 내심 좌절한다. 나윤의 재능에 관한 확신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 참여한 주니어 콩쿠르를 계기로 더 무너졌다.

무기력해진 나윤은 어느 날 이민자촌을 걷다가 차원의 마녀를 만나게 되는데. 마녀는 넘을 수 없는 벽을 괴로워하는 나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감상 – 나윤이 전반부 이야기부터 마녀를 만나고 거래한 뒤의 내용까지 캐릭터 설정과 감정 묘사, 내용 전개 방식이 재미있었고 인상 깊었다. 또한 거래의 부작용이 나타난 나윤의 이후 모습까지 잘 짜인 스토리라고 느꼈다.

<깡총(이산화)>
토끼 사냥꾼 라일리에게 토끼란 겁먹으면 도망치는 그런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주 웬디를 통해 과거의 토끼는 이를테면 깡총 뛰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라진 토끼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어찌 되었든 토끼는 계속 뛰었고 그렇게 뛰어서 지금의 토끼인 채로 있게 되었다.

감상 – 작품은 사이언스 픽션인 SF에 어울리는 토끼 탐험 과학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단순한 사실도 있지만, 여기에 상상의 요소나 설정이 더해져 이야기에서 설득력도 있다고 할까. 다만, 긴장감이나 박진감이 드는 장면이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월담하려다 접천(이서영)>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구촌 네트워크가 죽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방패님이 둘러싸고 있는 서울은 네트워크가 가능한 곳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연경은 어느 날 오랜 친구 현정이 ‘서울 밖에는 인터넷이 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자 내심 불안해진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치고 친구의 조언을 따른 결과, 연경은 상상한 적 없는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감상 – 고립된 세상에서 몰래 인터넷으로 바깥과 소통한다는 설정은 다소 진부해 보였다. 내용 전개도 평이한 느낌이었는데 그래도 연경이 반격을 준비하는 결말 설정은 좋았다고 느낀다.

<무너뜨리기(이유리)>
권태기가 찾아온 7년 차 부부 수정과 정진은 관계 회복을 위해 ‘리빌딩’ 컨설팅을 받고 거짓말처럼 서로에게 설레는 예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부부의 잠결에 들이닥친 두 괴한은 이들 관계에 의문을 남게 하는데.

감상 – 이 소설을 SF 장르로 볼 수 있는 요소는 부부 컨설팅 프로그램인 리빌딩이라고 생각한다. 부부 사이는 컨설팅 이후 좋아졌다가 괴한 때문에 다시 물음표가 생기는데 아쉬운 이야기 전개라고 생각한다. 컨설팅의 효과는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효과가 좋았다면 어째서 괴한이 찾아온 이후 부부의 생각이 변한 건지 독자로서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무르무란(정보라)>
검은깃털은 무리와 사슴 사냥을 마치고 부족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같이 사냥에 나갔던 흙발굽이 사슴뿔 소유를 주장하며 나섰고 현명한 큰어머니는 공을 근거로 검은깃털의 소유를 판정한다. 하지만 이를 인정 못 한 흙발굽은 검은깃털에게 덤빈 후 사고로 죽어버렸다가 훗날 죽은 자로 되살아나 부족 앞에 나타난다.

죽었던 흙발굽이 나타나자, 현명한 큰어머니와 뻣뻣한털가죽 아주머니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 전해 들은 무르무란을 부르기로 하는데.

감상 – 신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죽은 자를 먹는 자의 이야기가 절묘하면서 살짝 오싹하게 조합된 느낌이었는데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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