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천 개의 파랑 리뷰. 세상에서 가장 긴 3초 간의 감동

특수 제작된 기수(騎手) 휴머노이드가 말을 타고 경마를 하는 가까운 미래. 우연한 사고로 탄생한 호기심 많은 로봇 콜리는 경주마 투데이에 올라 타 최고의 호흡과 기량을 뽐낸다. 하지만 짧은 전성기를 지난 투데이는 안락사에, 낙마 후 하반신이 날아간 콜리는 폐기될 위기에 처하는데, 때마침 나타난 소녀 연재로 인해 콜리와 투데이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한다.


저자 – 천선란
발행 – 허블 (2020)
페이지 – 376p
* 2019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가까운 미래 한국에서는 대량 생산된 휴머노이드가 사람 대신 경주마에 앉아 경마 경기를 진행한다. 기수 관리자인 민주는 어느 날 경기장에 들어온 C-27 이름이 붙은 로봇이 다른 휴머노이드들과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한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학습을 위한 칩이 들어간 C-27은 주변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때마다 민주에게 질문해 왔다. 어이가 없었던 민주는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C-27에게 경주마 투데이와 달릴 것을 지시한다. 둘의 성적은 나날이 좋아져 최상위권에 이르게 되지만, 투데이의 무릎 연골이 약해진 탓에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곧 경마장 내 인기도 시들해진다.

이제는 달리기 힘들어하는 투데이를 더 지켜볼 수 없었던 C-27은 결국 레이스 중 스스로 낙마하는 선택을 취하는데. 결과적으로 투데이에는 안락사가, 몸의 절반이 박살 난 C-27에는 폐기처분이라는 가혹한 미래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경마장에 들린 로봇에 관심 많던 고등학생 소녀 연재는 색다른 C-27을 접한 뒤 결국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은 돈을 써서 불법이지만 매입하는 데 성공한다.

연재는 브로콜리 색깔을 닮은 C-27의 몸체를 보고 콜리라고 이름 붙인 뒤 집으로 데려와 하반신 수리에 열을 올린다. 필요한 부품은 같은 반이지만 친하지는 않았던 지수와 공동으로 로봇 경진대회에 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지수의 아버지로부터 도움받는다.

마침내 콜리의 몸을 수리하는 데 성공한 연재는 지수와의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한편, 투데이의 안락사를 막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경주’도 계획하는데. 과연 특별한 휴머노이드 콜리와 경기에서 은퇴한 투데이는 어떤 달리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소설 리뷰

<천 개의 파랑>은 색다르게도 소설의 결말 장면부터 콜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주용 휴머노이드인 콜리는 마지막 레이스의 마지막 순간, 자신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이야기의 본론으로 넘어오면 연재가 처음 낙마한 콜리와 만나는 장면부터 그녀의 가족인 어머니 보경과 언니 은혜, 지수와의 만남과 대회 준비 및 콜리와 투데이의 마지막 레이스까지 이어지는 긴 서사가 이어진다. 사실 본론을 읽는 동안 실망감과 지루함을 느꼈는데, SF 소설에서 이런 평범한 가족, 친구 드라마가 도대체 왜 이렇게 분량이 많고 자세하게 나와야 하는 건지 아쉬움이 컸다고 할까.

특히 SF 장르에 기대했던 근미래 과학기술의 요소도 경마용 휴머노이드의 등장 외에는 딱히 비중이 없어서 장르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콜리와 투데이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레이스를 성공시키는 소설 첫 장의 시점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말이다.

여기서 잠시 SF 장르 소설이란 공상 과학 소재로 가득해야만 하냐는 점을 짚어보자. <천 개의 파랑>은 SF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사이버펑크나 인류 대재앙 디스토피아 같은 배경은 존재하지도 않고 오히려 현실과 다름없는 수수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아했던 것도 사실인데, 시작과 결말이 이어지는 설득력을 갖춘 스토리 구성과 전개 방식이 겉보기에 평범하고 진부한 드라마 같은 전체 스토리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수리를 마친 콜리가 안락사를 앞둔 투데이와 다시 경마장을 질주하는 결말에 있다. 질주라고는 해도 달리기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된 투데이였지만, 콜리는 다시 경마장을 달리기로 한다. 동시에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보던 콜리의 머리에는 무수한 생각이 스쳐 간다.

결론적으로 <천 개의 파랑>은 결말 부분에서 그동안의 서사가 맞아떨어지면서 감동이 있고 여운이 길게 남았다. 동시에 SF 장르로서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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