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몸값 10억 원을 도박으로 날린 뒤 일어나는 기묘한 상황, 4차 산업 시대에 번성하는 마케팅의 숨은 진실, 1년 전 죽은 희생자를 기리며 한날한시에 모인 사람들, 수상한 보안 구역 안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 등 현실적이면서도 기발하고 반전 있는 단편 모음집

발행 – 요다(2019)
페이지 – 280p
<증오의 동굴>
출입이 금지된 산속에 들어와 버린 김남우는 친구 최무정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내려가는 길을 두고 두 사람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 아래로 이어진 매우 깊은 동굴이 나타나는데. 김남우는 자신의 등을 밀었다가 당기면서 장난을 치는 최무정에게 짜증이 났다.
하지만 장난기가 많았던 최무정이 다시 한번 손을 움직였을 때 김남우는 진짜로 동굴 아래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실제 상황에 겁을 먹은 최무정은 피를 흘리는 친구를 놔두고 도망갔고, 그렇게 고등학생 김남우는 홀로 동굴 바닥에 남는다. 그때 동굴 위에서 낯선 얼굴이 하나 나타나더니 예상 못 한 일이 일어나는데.
<하나의 인간, 인류의 하나>
대량의 수면제를 실은 트럭이 정부 제한 구역 511로 계속 이동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최 기자는 인터넷에 음모론을 퍼트려 511구역 취재 허가를 받았고 후배 공치열을 취재에 끌어들인다. 하지만 곧 보안국 소속의 김남우가 이들 앞에 찾아와 국가가 원하는 취재 방향을 제시하는데.
이야기를 마친 세 사람은 511구역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파란색 꽃밭을 마주한다. 공중에서 드론들이 떨어트리는 다수의 수면제는 푸른 꽃들의 비료가 되고 있었다. 합의된 취재 내용은 ‘연구 목적으로 재배하는 꽃’이 되어야 했지만, 최 기자는 이것이 속임수라는 수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 그때 이들에게 접근해 온 중년의 두석규를 만나면서 조금씩 진실이 드러나는데.
소설 리뷰
이 책은 작가의 다른 소설집 시리즈처럼 기발하거나 독특하고 반전도 있는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는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 설정과 전개가 재미있다고 느낀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고 느낀다.
특히 이번 책의 작품들은 작가의 소설집 시리즈 작품들보다 평균 분량이 긴 편이기도 하다. 그리고 분량이 긴 것도 긴 것이지만, 인물의 서사부터 배경, 상황 설명이나 전개 방식이 기존의 초단편과는 다른 느낌의 이야기도 더러 있었다.
예로 ‘그녀들을 관찰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아이돌 연습생들을 지켜보는 합숙소 관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곳의 NPC나 다름 없는 관리자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소녀들의 치열한 권력투쟁을 관찰하고 희열을 느낀다. 이런 전개 방식은 문체가 담담하면서도 조금씩 내용이 흥미진진해져서 재미있었다.
이어서 ‘자살과 타살과 그 사이’는 아파트 층간소음으로 윗집 이웃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은 최무정 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희생자 중 한 명인 정재준의 마지막에 의문점을 느낀 형사들이 움직이면서 진실을 밝혀나가는데, 마치 짧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 밖에도 파워레인저 강도들이 노인의 재산을 노리는 ‘노인을 위한 금고는 없다’나 5년 전 교통사고의 진실을 알게 되는 ‘목격자’도 완전한 현실 기반 내용이라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고도 느끼기도 했다.
다만 자신을 향한 타인의 호불호 감정을 스위치로 바꾸는 ‘스위치 하나로 바뀌는 내 세상’은 너무 단순한 설정과 전개라서 공감이 가지 않아 아쉬웠는데, 책에 전체적으로 괜찮은 이야기는 많았다고 느낀다. 작가는 초단편도 물론 좋지만, 이번 책에서처럼 앞으로 조금 긴 단편을 더 만들어도 왠지 기대된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