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에게 벗어난 뒤 만난 인간들에게 실망하는 청년, 우연히 태어나 본체인 주인을 닮아가는 분신, 인간에게 잡혀 이용당한 여우가 보여주는 인간 경멸, 장기간 방치해서 생명이 꺼진 줄 알았던 인조인간 로봇의 감정 등 부당하게 배신당하거나 버림받은 존재들의 복수 이야기 단편 모음집

발행 – 아작(2019)
페이지 – 328p
<저주토끼>는 저명한 부커상 후보로 올랐을 때 이름을 접했다가 최근에 읽게 되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복수라는 주제를 가진 총 10편의 단편 이야기를 실은 소설집이다. 우선 대표작인 ‘저주토끼’에서는 대대로 저주 용품을 만들어 온 집안에서 자란 주인공이 할아버지로부터 오래전 친구의 일화를 듣는다.
술도가의 아들이었던 친구는 가업을 이어받은 뒤 성실히 연구한 술로 시장에 진출하지만, 경쟁 업체가 만든 소문으로 파산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당시 젊은 할아버지는 가문의 규율을 깨고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저주토끼를 만들어 경쟁 회사에 보내는 데 성공한다.
토끼의 저주가 잘 먹힌 탓에 회사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그 시작으로 사장의 보석 같던 손자가 미쳐버리더니 다음은 아들이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침내 사장은 회사의 도산을 지켜본 뒤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토끼가 불러 온 냉철하지만 뜨거운 복수는 매우 강렬하게 읽혔다.
비슷한 감정을 느낀 ‘덫’에서는 겨울 산길을 걷던 남자가 덫에 걸려 황금 피를 흘리는 여우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남자는 풀어달라는 여우의 요청을 무시하고, 묶어 둔 여우가 죽지 않을 만큼만 보살피며 황금 피를 모아 부를 축적한다. 시름시름 앓던 여우는 몇 년 뒤 죽었지만,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해괴한 일이 일어났고 점점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
그 밖에도 자신을 방치한 인간과 대치하는 1호의 이야기 ‘안녕, 내 사랑’이 있었고, 특히 ‘차가운 손가락’과 ‘즐거운 나의 집’은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라서 흥미로웠다.
한편, 본체와 분신이 나오는 ‘머리’는 본체가 조금 억울해 보이지만, 분신의 탄생과 이야기 전개는 재미있다고 느꼈다. 조금 지저분하면서도 과장된 설정이 있고 분신은 복수의 명분까지 갖추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가 짜임새 있게 맞물리는 개성이 재미있었다고 할까.
결론적으로 <저주토끼>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상의 파멸을 부르는 잔인한 복수 과정의 묘사가 많아서인지, 복수를 달성했다는 통쾌함은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소재나 내용 구성 등 독창성과 완성도가 좋았던 작품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다른 소설집 <여자들의 왕>에 나오는 기사, 공주, 드래곤 이야기를 좋아한다. 무기를 든 전투나 마녀의 저주, 언데드도 나오지만, 클리셰를 깬 설정 덕분인지 잔인하다기보다는 유쾌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내용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