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람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이유는

전에 알고 지냈던 일본인 지인 몇 명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평범한 한국 배추김치를 맛보더니 연신 맵다면서 땀을 흘리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일본 사람은 이 정도로 매운 걸 못 먹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일본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스시, 라멘, 소바, 돈부리, 샤브샤브, 카레, 덴푸라(튀김), 와규(소고기)… 일본 음식은 종류는 많지만, 어쩐지 매운맛이 특징인 음식은 잘 떠오르지 않는 것 같다. 대신 간장과 설탕을 베이스로 해서 짭짤하고 단맛을 내는 소스나 양념은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따라서 고추나 마늘 같은 매운맛을 내는 채소나 향신료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나마 사용한다면 시치미(七味 : 일곱가지 맛과 향을 냄) 향신료 정도가 있겠는데 고춧가루를 주재료로 깨, 생강, 김, 산초, 소금 등의 재료를 넣고 만들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 입맛에는 그렇게 맵지 않다.

국제화와 한류 유행 등에 영향받은 몇몇 외국 음식이나 김치 같은 음식을 제외하면 일본에서 매운 음식을 접할 기회는 적은 것 같다. 그렇다 보니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일본 음식에는 매운 요리가 적은 걸까? 이는 일본의 지리적인 조건과 기후, 음식 역사와 문화 등과 관련이 있다.


일본사람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이유는. 다양한 향신료
다양한 향신료



일본의 지리 조건과 와쇼쿠

일본은 오래전부터 바다에 둘러싸인 섬나라 환경이었던 만큼, 신선한 해산물을 소비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달하였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신선한 재료의 맛과 식감을 추구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을 사용하는 초밥이나 생선회 같은 요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선한 재료의 맛과 풍미에 집중하는 것은 일본의 식문화인 와쇼쿠(和食)의 정신과도 연관 있다. 일본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1년 사계절의 변화도 뚜렷하다. 그래서 지역마다 기후나 풍토가 다르고 구할 수 있는 음식 종류에도 차이가 크다.

와쇼쿠의 정신은 바로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이 주는 음식을 감사하게 소비하는 생활 방식과도 연관있다. 그래서 고춧가루처럼 재료 본연의 맛을 덮을 수 있는 강한 향신료는 음식의 주연이 아닌 조연 정도로만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6세기 도입된 불교의 영향으로 자극적인 향신료를 피하려는 문화가 있다는 설(說)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시치미는 원래 한약이었다

앞서 고추가 일본에 처음 전래된 것은 16세기 중엽 포르투갈의 한 선교사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이후 1625년 (간에이2년 寛永2年), 한약으로 유명했던 에도의 니혼바시 약연 호리쵸(日本橋薬研堀町)에서 가게를 차린 토쿠에몬이라는 향신료 상인이 처음 시치미를 만들었다.

처음 시치미는 한약을 기본으로 여러 재료를 배합해서 만든 일종의 한약이라서 약효를 기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에도 사람들에게 맛이 좋다고 알려져 인기를 얻고 곧 일본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다.

참고로 17세기 처음 시치미를 만든 이 가게 이름은 야겐보리(やげん堀)라는 곳인데 지금도 일본에서 옛 방식 그대로 전통을 지키면서 시치미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한국 음식이 일본에서 인기 있는 이유

일본은 전통적으로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리는 와쇼쿠 문화가 발달했지만,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 음식을 찾는 일본 사람이 많아졌다. 한국 음식은 전통적인 일본 음식과 비교하면 무척 다양한 향신료와 재료를 사용한다. 여기에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종류도 다양해서 일본 사람에게 매력적인 부분인 듯하다.

삼겹살이나 갈비, 잡채 같은 덜 매운 음식도 그렇지만, 짬뽕처럼 상대적으로 매운 요리 역시 인기가 많아진 것 같다. 특히 신라면이나 불닭볶음면 같이 매운 라면도 일본 내 소비가 부쩍 늘어난 것 같은데 일본에도 매운 음식 잘 먹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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