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밥은 과학적인 음식일까 (발효 음식)

어떤 음식이나 요리가 ‘발효’나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과학적인 제조 방식이라고 말다. 이는 특정 재료를 특정 방식으로 일정 기간 이상 발효하면 미생물 작용에 의해 성분이 변화하면서 인체에 유효한 영양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발효와 숙성으로 잘 알려진 요리는 유럽의 치즈나 요거트, 사워도우 빵, 한국의 김치나 된장, 간장, 막걸리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템페 등이 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일본식 된장과 간장, 청국장과 비슷한 낫토 등을 들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일본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초밥(스시, 寿司) 역시 발효 음식이라니 놀라운 사실이다. 알려진 대로 초밥은 잘 지은 밥에 소금·식초·설탕으로 만든 초대리(초밥 물)을 섞은 다음, 적당한 양의 밥 위에 생선 조각 등을 올려 완성하는 요리이다. (握り寿司 니기리즈시 : 손으로 쥐어 만드는 초밥)

이 과정에서 딱히 발효라고 부를 수 있는 과정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갓 손질한 생선을 밥에 올려 먹는 신선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초밥이 발효 음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초밥의 유래와 발전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그 해답을 알 수 있는데 사실 초밥의 유래는 일본이 아니다. 초밥이 처음 생긴 것은 기원전 4세기 무렵 동남아시아의 메콩강 지역(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으로 당시 민물고기에 소금을 뿌리고 돌로 밥을 같이 눌러서 발효한 다음 장기간 보관하며 먹는 음식이었다.

이후 초밥은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나라시대(奈良時代 : 710~794)에 들어 일본에도 전해질 수 있었다. * 이 무렵 일본과 중국 당나라의 교류가 활발했는데 불교 승려들을 통해 발효 생선 요리인 초밥도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초밥은 나레즈시(熱鮨 なれずし)라는 이름으로 생선 종류를 유산 발효해서 먹을 수 있었는데 밥알은 버리고 생선만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 1185 ~1333)에 들어 발효를 중간에 멈추고 밥을 같이 곁들여 먹기 시작했는데 나마나레즈시(生なれずし)로 불렸다.

오늘날과 같은 초밥이 처음 등장한 것은 에도시대 (江戸時代 : 1603~1868)이다. 당시 일본 내 정치와 경제가 안정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수도인 도쿄(에도)가 번성하면서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런데 기존 방식의 초밥은 발효 시간이 오래 걸리는 특징으로 인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에도에서는 당시 보편화된 식초를 이용해서 생선의 발효 시간을 줄이고 신선한 생선과 밥을 같이 먹는 형태로 초밥을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드는 초밥은 빠르게 만든다고 하여 하야즈시(早鮨:はやずし)로 부르기도 했다.

에도시대의 니기리즈시 그림. (인터넷 발췌)
요즘 초밥보다 생선도 크고 밥량은 3배 정도 된다.

또한 이 무렵, 초밥에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쥘 스시(握り寿司 니기리즈시)의 탄생이다. 기존 초밥은 가마쿠라 다음 시대인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 1336~1573)에 틀에 넣어서 발효하고 만든 하코즈시(箱寿司 : はこずし, 상자초밥)의 형태를 따랐는데, 에도시대에 요리점을 운영하던 하나야 요헤이(華屋与兵)라는 요리사가 쥘 스시를 개발했다고 한다. (발효 스시의 기원이 동남아시아라면 쥘 스시의 기원은 일본이 맞다)

이후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에 들어 얼음을 활용한 생선 보존이 수월해지면서 생선은 날생선을 적당히 요리하고, 식초 물은 밥에만 처리하는 등 현대의 초밥과 점점 닮아간다.



오늘날 초밥과 후나즈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오늘날 많이 먹는 형태의 초밥은 발효와는 상관없는 신선한 요리에 가깝다. 하지만 현재도 일본의 일부 향토 지역을 방문하면 여전히 옛 방식으로 발효해서 만든 초밥을 맛볼 수 있다.

대표적인 발효 초밥 중 하나라면 붕어 살코기 안에 밥을 채워 넣고 소금 등으로 발효해서 만드는 후나즈시(鮒ずし)인데 일본 시가현(滋賀縣)의 전통 요리로 통한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철이면 일본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호(琵琶湖)에서 후나즈시를 만드는 붕어를 잡는다.

잡은 생선은 손질을 거쳐 소금에 절인 후 갓 지은 밥을 넣고 1년 정도 발효해야 완성된다. 약 1년 발효되는 과정에서 쌀과 생선 뼈는 형태가 녹아 매우 부드러워지는데 완성된 후나즈시는 발효에 사용한 밥은 제거하고 생선만 먹는다.

초밥의 맛은 감칠맛이 있다고 하는데 특유의 향과 시큼한 맛이 강해서 처음 맛보면 마치 한국의 삭힌 홍어처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만약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시가현을 방문했을 때 찾아볼 수 있겠다.


EBS 후나즈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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