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 소설 마왕 리뷰. 줄거리 감상

복화술로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말하게 할 수 있는 형 안도와 1/10 범위에서라면 절대적인 행운이 따르는 동생 준야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려는 이야기. 마침 등장한 이누카이라는 정치인은 강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헌법 9조 개헌 투표를 진행하자고 나서는데 이에 형제는 무언가 잘못 되고 있다고 느끼고 행동에 나선다.


원제 – 魔王 (2005)
저자 – 이사카 고타로
옮긴이 – 김소영
발행 – 웅진지식하우스 (2006)
페이지 – 608p

<마왕 : 형 안도의 이야기>
어느 날 안도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자기가 생각하는 대사를 말하게 할 수 있는 특이한 복화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우연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작은 실험을 거듭할수록 능력에 대한 확신이 굳어졌다.

복화술을 제외하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안도는 동생 준야와 TV 심야 토론회에서 야당 대표로 나온 정치인 이누카이 보게 된다. 그는 유능해 보이는 외모와 화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작금의 일본인은 TV나 인터넷 정보에 휩쓸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며 지적한다. 또한 자신에게 정치를 맡긴다면 미국, 유럽 등 강대국과의 관계를 확실히 할 것이고 일본의 미래를 다시 세우겠다고 다짐한다.

사건의 발단은 일본의 한 유망한 미드필더 축구선수가 미국인에게 죽었다는 불분명한 소문이 퍼지면서부터다. 일본 국내에는 반미 정서가 퍼져서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나 각종 브랜드가 부서지거나 시위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한밤중 퇴근하던 안도는 미국 패스트푸드점을 불태우려는 소년들을 만나 저지해 보려고 한다. 마치 다들 귀신에 들린 것처럼 미국을 증오하는 생각에 전염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년들은 방화를 저지하려는 안도를 공격하려고 했고 안도는 복화술을 활용해 간신히 위기에서 탈출한다.

며칠 뒤 안도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누카이의 연설 현장에 도착해 있었다. 안도는 이누카이가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며 반미 정서를 부추기는 것이라는 생각에 복화술을 이용해 보기로 하는데, 그때 머릿속에서 예상 못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호흡 : 동생 준야의 이야기>
총리가 된 이누카이는 일본 헌법 9조 개정을 위한 전 국민 투표를 정책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유일한 원폭일본이 유일한 원폭 피해국가이면서도 헌법 9조에 묶여 전쟁을 포기하고 침략을 당해도 속수무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 투표가 있거나 말거나. 준야와 그의 아내 시오리는 TV도 신문도 없는 집에서 평화롭게 하루를 보낼 뿐이다. 준야에게 행운이 따른다는 능력을 발견한 것은 매번 그와의 가위바위보에서 진 시오리의 생각에서다. 둘은 행운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경마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말도 안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시오리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인 국민 투표를 두고 준야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평소의 준야는 헌법 개정이든 국민 투표든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누카이에 관한 이야기를 청산유수로 내뱉는 준야의 모습은 마치 그의 형 안도를 연상케 했다.

이후 준야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어마 뒤 시오리는 집안 장롱 위에서 의문의 통장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준야의 기이한 행운과 형 안도가 빙의된 듯한 모습 그리고 통장까지. 시오리는 용기내어 준야에게 말을 꺼내 보는데..


소설 감상

소설 <마왕>은 이사카 고타로 작가가 데뷔한 지 7년 정도가 되었을 때 펴낸 작품이다. 데뷔작인 <오듀본의 기도>나 <러시 라이프>, <사신 치바> 혹은 <마왕> 이후에 나온 작품의 주요 특징이라면 유쾌한 설정의 캐릭터들이 정의를 찾아서 벌이는 짜임새 있는 퍼즐 구성의 내용과 전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전형적인 작가의 스타일 틀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거의 매번 등장하는 ‘정의가 악을 응징한다’의 관점은 이번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지만, 딱히 명확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유의 퍼즐 구성도 굉장히 미약하다고 느꼈다.

주인공 형제인 안도와 준야의 초능력은 사실 세상을 바꿀 정도로 비범하기보다는 오히려 하찮은 수준에 가깝다. 자기 생각을 타인의 입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그동안 타인은 기억을 잃는다) 복화술은 최대 30보 이내에서 가능하고 한 번 사용하면 정신 피로가 오는 제한이 있다. 당연히 시공간을 초월하는 TV 브라운관 건너편의 인물에는 아예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다.

동생 준야의 행운 능력은 뭐, 따지고 보면 좋은 건 맞지만 직접 악당을 퇴치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심지어 1/10이라는 범위 제한도 있어서 어디 쓸만할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준야는 형 안도처럼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 구현을 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선다.

소설을 읽는 동안, 주인공 형제가 각각 평범하고 하찮은 초능력으로 거대 악에 맞선다는 내용은 이사카 월드에서 자주 나올 법한 설정이라 반가운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작품의 속도감이나 반전 묘미, 퍼즐 구성의 부재가 크다고 느꼈는데 한 마디로 아이디어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재미 요소가 떨어진다. (작가의 말에 ‘반전, 통쾌감을 버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보자’라는 언급이 있기는 하다)

또한 가상의 내용이기는 해도 일본의 헌법 9조 개정(일본 내 군사력 강화)과 같은 파시즘(민족주의/국가주의)요소의 비중이 적지 않았던 점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끌리지 않아 아쉬웠다.

끝으로 소설의 제목 <마왕>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들에게만 보이는 마왕의 존재는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마왕은 아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성공하는데, 소설에서도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존재가 있고 금방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설정 역시 크게 와닿지 않아 결론적으로 소설 <마왕>은 아쉬움이 크다.

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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