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리뷰 – 이사카 고타로

자몽러

09/05/2025

약 2년 전 비극적인 애완동물 학대 사건을 벌인 범인들과 엮이게 된 고토미와 도르지, 가와사키 세 주인공의 이야기. 2년 후, 대학교 신입생 시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 이야기의 조연이 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2년 전 사건의 진상을 찾아 나서게 된다.


원제 :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2003)
저자 : 이사카 고타로
옮긴이 : 인단비 
발행 : 황매 (2007)
페이지 : 445p

대학교 신입생 시나는 학교 근처 아파트에 자취방을 구해 이사오던 날, 옆집에 살던 또래의 청년 가와사키로부터 난데없이 서점을 털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시나는 가와사키의 황당한 논리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점 앞에 와버리게 되었다.

모델건을 든 가와사키가 서점 안에서 일을 벌이는 사이, 시나는 서점 뒷문에서 직원이 나오지 못하게 가끔 발로 문을 차는 역할에 충실했는데. 좋아하는 밥 딜런의 노래를 몇 번 반복해서 부르는 사이 가와사키는 계획대로 대사전 한 권을 훔쳐서 그의 앞에 나타난다.

둘의 계획은 성공했고 걱정했던 경찰의 연락은 오지 않아 시나는 안심했다. 하지만 어째 이 모든 것이 수상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연히 밤이 되면 어디론가 차를 운전했다가 돌아오는 가와사키를 발견한다.

의문의 실마리는 어느 날 시나가 시내버스에서 마주친 미모의 여성 레이코를 다시 만나면서 풀리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는 가와사키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운영하는 펫숍을 중심으로 2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마침 시나는 고향의 어머니로부터, 대학을 그만두고 병상에 누운 아버지 대신 가업인 양장점을 물려 받으라는 전화를 받고 진로를 고민한다. 시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레이코로부터 들은 2년 전 일의 전말에 더해 가와사키의 정체에 관해서도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지는데.


소설 감상

이번 소설은 현재 시점의 주인공인 시나와 2년 전 이야기의 중심인 가와사키 외 2명의 이야기가 1장씩 교차로 진행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두 시점의 이야기에 딱히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혼란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우선 현재. 낡은 아파트에 이사 온 시나가 문득 복도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다가 가와사키가 다가왔고, 서점털이를 권유하는 대목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그리고 다시 2년 전. 일본 여성 고토미와 부탄의 남성 도르지는 서로 사귀는 사이였지만, 도르지의 일본어 실력이 떨어져서 서로 영어로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고토미의 전 애인이었던 가와사키는 커플 두 사람 앞에 자주 나타났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거나 도르지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쳐준다.

미남인 가와사키가 많은 여성들에게 접근한다는 설정이나(고토미는 그런 그의 모습을 얄미워한다) 도르지의 일본어 이야기 등은 솔직히 읽는 동안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소설 첫 장에서 시나를 꼬드긴 가와사키의 서점털이 계획도 소설 중반부에 가서야 실현된다.

하지만 서점을 턴 이후에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나온 것도 아니라서 도대체 이 소설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려는 것인지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후부터 작가가 정신없이 뿌려놓은 퍼즐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진다. 마치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이야기는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는데.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복수에 있다. 마치 작가의 다른 소설인 <중력 삐에로>가 연상되는데 선이 악을 응징함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연출과 구성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여기에 잘 짜맞춘 퍼즐이 맞춰지면서 복수의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점은 이사카 고타로식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은 중반부까지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거나 지루하고 복수의 방식 역시 현실적이지 않아 잘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랄까.

한편 모든 사건의 중심 열쇠 중 하나는 부탄에서 온 남자 도르지가 지니고 있다. 집오리와 들오리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했던 그는 ‘집오리 = 집에서 기르는 오리, 들오리 = 수입한 오리’라는 답을 얻지만, 결국 출신 성분과 상관없이 오리는 같은 오리이다. 작가는 소설 제목에서부터 힌트를 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후반부에 가서 의미가 와닿았다.

또한 코인로커는 기억에 소설 거의 마지막에서 딱 1번인가 등장했던 것 같다. 가와사키는 밥 딜런의 카세트 테이프를 커다란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한 채로 코인로커에 넣고 문을 잠가버린다. 무심코 지나가면 모르더라도 자세히 귀를 기울이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건 마치 2년 전 사건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처럼, 코인로커 안에서 끝없이 재생되는 밥 딜런의 음악 또한 누군가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다는 그런 상징이 아닐까 싶다. 2년 전 가와사키가 2년 후 현재인 시나와 밥 딜런의 음악으로 연결된 것처럼 말이다. 엄청 심오한 설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잔잔한 여운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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