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킬러 시리즈 3부작, 첫 번째

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킬러 시리즈 3부작, 첫 번째


그래스호퍼 GRASSHOPPER(메뚜기)

원제 – グラスホッパー (2004)
저자 – 이사카 고타로
옮긴이 – 오유리
발행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9, 개정판)
페이지 – 408p


* 소설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수학 교사 스즈키는 의문의 조직 보스의 망나니 아들이 벌인 사고로 어처구니없이 아내를 잃은 뒤 복수를 꿈꾼다. 그리하여 교사직을 그만둔 다음 조직에 위장 취업해서 약 한 달간 계약 사원 근무를 이어간다. 그러나 스즈키의 상급자는 아직 조직이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며 어떤 제안을 내민다. 제안을 받아들인 스즈키는 이동하던 중, 마침내 도로 건너편에서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는 망나니 아들을 발견한다.

복수의 대상을 눈앞에 둔 스즈키에게는 상급자의 제안에 따라 곧 권총 한 자루가 쥐어질 예정이었는데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찰나, 망나니 아들이 차에 치여 죽어버린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허탈해진 스즈키는 마침 사건 현장을 벗어나는 한 남자를 발견했고 곧 상급자의 지시대로 그를 쫒게 된다. 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쩌면 지금 도망가는 남자는 조금 전 망나니 아들을 차에 떠밀어 죽게 하는 킬러, 이른바 ‘푸시맨’일지도 모른다.

남자를 미행한 끝에 그의 집 앞에 도착한 스즈키는 조마조마해졌지만, 정말로 이 남자가 푸시맨이 맞는지 밝혀내고 싶어졌다. 가까스로 가정교사를 자처하여 남자의 집에 들어가는 것에는 성공하였지만, 푸시맨으로 의심받는 남자의 가정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이게 정말 사람을 죽이는 킬러의 가정이란 말인가?’ 화목한 남자의 가족을 바라보는 스즈키의 혼란은 가중되어 간다.

그러는 와중에 조직은 계속해서 스즈키에게 전화를 걸어 푸시맨의 위치를 알리라고 압력을 가하는데 스즈키는 내심 확신이 서지 않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한다. 하지만 스즈키가 망설이고 있을 때 이미 자살 유도 킬러인 ‘고래’와 칼잡이 킬러 ‘매미’가 그의 행방을 쫓으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하게 진행되는데..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도 벌써 10년은 지난 것 같다. 처음 읽은 소설은 아마 <중력 삐에로>이었던 것 같은데 캐릭터가 무척 개성 있고 이야기 전개도 유쾌한 데다 특히 퍼즐 같은 구성을 통해 마지막에 하나의 결말로 잘 짜 맞춰지는 과정이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소설도 궁금해졌고 이후 <사신 치바>, <오듀본의 기도>, <러시 라이프>와 같은 작품을 탐독하기도 했다.

여태 읽어 본 소설 작품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내용이 빠르게 진행되다가 중간에 등장하는 단서 몇 가지가 결말에 이르렀을 때 탁 들어맞는다. 당연히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의 요소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무겁지 않고 재치 있고 기발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인물들이 범죄를 모의하거나 심지어 사람이 죽는 장면이 나와도 어쩐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안에서는 무겁지 않다.

<그래스호퍼> 역시 그 내용 전개만 보면 앞서 읽어 본 다른 소설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소설은 작가가 작정하고 킬러 시리즈로 만들어 낸 작품이라서(나머지 두 편은 <악스>와 <마리아 비틀>) 이야기 처음부터 끝까지 킬러나 조직 또는 사람을 죽이는 내용이 등장하지만, 크게 무겁거나 심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킬러가 등장해도 전혀 긴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퍼즐처럼 꼬여 있는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져서 다음 장을 넘기기 바빴던 것 같다.

<그래스호퍼>의 전체 이야기는 마치 메뚜기가(소설 제목의 영어 뜻) 떼 지어 사는 것과 같은 인간 사회 속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와 방식대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가는 내용에 그 핵심이 있는 것 같다. 킬러든 조직이든 평범한 수학 교사든 또는 소설 속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도 저마다 사는 이유나 방식이 제각각이다. 작가는 이번 소설에서 킬러들이 서로 쫓고 쫓기는 과정을 통해 복잡한 인간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게 아닐까 한다.

한편 소설을 읽다가 아쉬웠던 부분은 킬러가 작업할 때 일 처리의 묘사가 다소 상세하다는 점인데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원래 작가가 이런 장면을 이렇게 자세히 묘사했나?’ 하지만 역시 캐릭터들마다 성격 개성이 강해서 킬러의 작업 장면보다 더 부각되는 느낌이라 조금 무뎌진 것 같다. 그러다 소설 중반부 이후로는 이런 묘사에도 잘 적응해서 끝까지 재미있게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결론은 역시 이사카 고타로 스타일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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