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로 생각하는 환경 문제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로 생각하는 환경 문제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원제 – 分解の哲学 ―腐敗と発酵をめぐる思考 (2019)
저자 – 후지하라 다쓰시 (藤原辰史)
옮긴이 – 박성관
발행 – 사월의책 (2022)
페이지 – 396p

목차

프롤로그: 생겨나면서 손상된다
1장 ‘제국’의 형태 - 네그리와 하트의 ‘부패’ 개념에 대하여
2장 나무블럭의 철학 - 프뢰벨의 유치원에 대하여
3장 인류의 임계 - 차페크의 미래소설에 대하여
4장 넝마주이의 마리아 - 법과 일상의 틈새에서
5장 떠들썩한 장례식 - 생태학사 속의 ‘분해자’
6장 수리의 미학 - 수선한다, 푼다, 베푼다
에필로그: 분해의 향연


저자가 오래 전 한 공공주택에 살았을 적에 그곳에는 청소 아저씨가 한 명 있었다. 청소 아저씨는 단순히 청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번 주민들이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에서 쓸만한 골판지나 스티로폼 등을 찾아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고는 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는 인기 만점이었고 주민들에게는 존중받았다.

나중에 저자는 문득 청소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패’라는 자연의 섭리와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식물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거나 부패하고 썩어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이지만, 인간 사회의 모습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그 이유라면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플라스틱을 비롯한 썩지 않는 물건과 쓰레기가 토양이나 해양에 넘치고 있어서다.

현대 사회에 탄생한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썩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한번 사용되고 버려진 물건이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무언가 만들어지기만 할 뿐, 부패와 발효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시 사용도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쌓이는 쓰레기 양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쓰레기로 포화 상태가 될 것이다!

다시 저자가 살던 공공주택 이야기로 돌아오면 청소 아저씨야말로 버려진(아마도 다시는 활용되지 않을) 쓰레기를 공룡이니 인형 같은 장난감으로 재탄생시키는 존재이다. 마치 자연에서 부패와 순환의 과정을 돕는 존재인 셈이다. <분해의 철학> 본문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사회, 역사, 문학, 생태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와 범위에서 어떻게 지구 생태계와 환경이 자연스럽게 부패하고 순환하는지 다루고 있다. 아래 몇 가지 본문 내용 예시를 살펴보자.



4장 넝마주이의 마리아 – 법과 일상의 틈새에서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로 생각하는 환경 문제. 4장 중 일부
<분해의 철학> 4장 중 일부

지금도 일본에 존재하는 넝마주이는 오래전 일본의 에도시대부터 있었다는 것 같다. (에도시대는 일본의 근대화가 시작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약 260년간 지속된 막부시대로 1603~1868년을 말함) 이들은 쓰레기나 폐지뿐 아니라 과거에는 동물의 사체까지도 쓸 수 있는 모든 것은 주워다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정작 사회에서 받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반기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넝마주이들이 사는 방식은 투박할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봤을 때 인간 사회에서 ‘분해와 발효’ 역할을 해왔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과잉생산과 신제품 소비로 인해 부패하지 않는 쓰레기가 넘쳐 나는 현대 사회에서야말로 이들의 역할은 재평가되어 마땅하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5장 떠들썩한 장례식 – 생태학사 속의 ‘분해자’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로 생각하는 환경 문제. 5장 중 일부
<분해의 철학> 5장 중 일부

앞서 4장에서는 넝마주이의 존재를 통해 인간 사회의 쓰레기 순환을 다루었는데, 이어지는 5장에서는 자연 생태계에서 생물들이 어떤 식으로 부패와 순환을 진행하는지 짚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죽으면 곧 명료한 일이 일어난다. 먼저 사자와 같은 맹수가 크게 한 몫 떼어간 다음 하이에나와 대머리독수리가 나타날 것이고 이어서 파리나 미생물, 마지막은 소똥구리까지 남김없이 사체를 해체하고 분해한다. 즉, 죽은 코끼리 한 마리가 크고 작은 수많은 동물의 양식으로 재탄생하는 순환의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고래가 죽어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산란을 위해 고향에 돌아오다 죽는 연어 떼도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자연의 일부로 순환한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생물이 부패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것 같다. 5장에서 저자가 예시로 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화장(火葬)이다.

화장은 말 그대로 죽은 인간을 태우는 장례 방식이다. 고온의 불로 모두 태워버리기 때문에 일부 잔해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자연에 순환될 것 역시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이는 <분해의 철학>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연을 거스르는 것과 다름없다.

화장을 하면 인간이 자연으로 순환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한 번 시신을 태울 때마다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본문에서는 세계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시신을 새 먹이로 주는 조장(鳥葬)을 언급하면서 화장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한다. 또한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버섯균사체로 만든 관에 시체를 매장하거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알칼리 가수분해장과 같은 친환경 장례 방식도 조금씩 도입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이런 장례 방식은 사람들에게 무척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보편화된다면 도심의 묘지난과 환경 문제 해결에도 도움 되지 않을까 싶다.


평소 지구 환경 보호에 관심 있어서 여유가 되면 관련 도서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경각심을 갖거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행동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번에 읽은 <분해의 철학> 역시 지구 환경 보호와 관련된 책이지만, 어쩌면 현대인들이 거의 생각하지 않는 ‘분해와 부패, 순환’의 가치와 철학에 주목해서 환경 문제를 생각한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환경 보호라고 하면 으레 과잉생산을 배척이나 해로운 화석 연료 대신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과 같은 내용을 많이 접했던 것 같다. 그런데 추가로 분해와 부패, 자원 순환의 관점에서 환경 보호를 생각해보니 그 느낌은 참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책 본문에서는 이 글에서 예로 들었던 4장, 5장 말고도 아이들의 놀이나 문학 작품 인용, 도자기 수리와 같은 내용을 통해 분해와 순환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독서를 마치고 환경 보호에 관한 사고(思考)의 범위가 넓어졌는데 앞으로도 더 많은 다양한 생각을 접하고 일상에서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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