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왕 리뷰 – 정보라 소설집

여자들의 왕 리뷰 – 정보라 소설집

소설은 남성이 주인공인 전형적인 형태의 오래된 이야기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바꾼 내용을 모은 단편 모음집이다. 기사와 공주, 드래곤이 나오는 서양 판타지부터 중앙아시아의 사막을 배경으로 한 여행 이야기, 정체를 숨기고 있는 흡혈귀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 – 정보라
발행 – 아작 (2022)
페이지 – 280p

책의 첫 이야기인 <높은 탑에 공주와>, <달빛 아래 기사와>, <사랑하는 그대와> 3부작은 기사, 공주, 드래곤이 나오는 서양 판타지이다. 그런데 용의 탑 꼭대기에 갇힌 공주는 전형적인 나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에게 꺼지라며 능숙하게 검을 휘두른다. 처음 이 장면을 읽었을 때는 단순히 공주의 중2병스러운 컨셉인가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공주와 기사, 왕과 왕비와 왕자 등 인물들의 사연이 나오면서 설득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작품 초반의 공주는 유모를 통해 인연을 맺어 달라고 부탁하는 등 연약한 여성이었으나, 이웃 왕국 왕자에게 홀로 시집오면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고 변하기 시작한다. 이후 다시 유모에게 부탁하여 스스로 용의 탑에 들어가고,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를 문전박대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왕과 왕비, 왕자까지 모든 사람들의 사연이 얽혀서 공주를 중심으로 희한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소설 첫 대목에서 검을 쓰는 공주가 나왔을 때 내용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공주부터 다른 인물들의 사정이나 전체 내용 전개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반면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자들의 왕>은 여자가 중심이라는 설정을 위한 작품 전개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여자들의 왕과 그녀로부터 죽음을 감지한 여자 주인공 그리고 그녀를 돕는 누이까지 설정 자체는 괜찮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어째서 서로 죽이려고 하고 왕위 찬탈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건지 명확한 설명이 없어서 내용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작가가 동슬라브 원초연대기와 집안의 역사를 바탕을 쓴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는 마지막에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장례식을 치른 외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잊혀버린 이야기들은 잊혔다는 사실조차도 잊히고 만다’며 운을 뗀다.

박물관에 들른 ‘나’는 <연대기>의 내용을 읽고 ‘여성 장수’로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청동 조상 장군 ‘승리자’를 바라보며 그녀의 과거를 상상해 본다. 그렇게 이야기는 주인공의 외할머니 회상과 승리자로 기록된 여장군의 과거가 교차로 등장하면서 전개된다.

‘나’는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후대에 남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치는데, 이야기가 남을지 아닌지는 후대에 전해 받을 사람이 결정하는 몫이라는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한 줄이 인상 깊다.

끝으로 <여자들의 왕> 단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연약한 모습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삶을 가꾸어 나간다. ‘기사, 공주, 드래곤’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단편은 분량이 짧아서 다소 아쉬웠지만, 저마다 개성과 재미가 있어서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