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공업대 어학연수 후기 2. 교류회와 연수 시작

학교에 일찍 도착한 덕에 현지 대학교가 개강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학기는 9월 새로 시작해서 한국이라면 2학기이겠지만, 중국에서는 1학기이다. 그래서 기존 학년 학생뿐만 아니라 신입생도 많이 도착했을 텐데, 이 무렵 교내에서 특별한 수업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신입생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특별한 수업이란 중국에서 대학 신입생이라면 성별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해야 하는 약 10~15일 정도의 군사훈련을 말한다. 이 훈련은 중국 정부에서 국방 교육을 대중화시키고, 참여 학생의 애국심과 인내심 또는 의지력 향상 등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으로 과거 한국에서 약 70~90년대 초 무렵까지 전국 고등학교에서 진행했던 교련 수업을 연상시킨다.

대련공업대 교내에는 큰 운동장이 하나 있는데 그날 우연히라도 이쪽을 지나게 되면 앳된 1학년 학생들이 군사복을 갖춰 입고 나란히 서서 제식 같은 훈련을 받는 장면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학생 개인의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높이고 기간도 이 정도면 적당한 듯한데 어쩌면 세계에서 중국만 거의 유일하게 시행하는 대학교 훈련이 아닐지 모르겠다.


교내 모습. 가운데 뒤로 운동장이 보인다


사전 교류회

학교에 모르고 도착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련공업대의 강점 중 하나는 바로 학교에서 본과생과 유학생의 교류회 자리를 마련해주는 점이다. 교류회가 중요한 이유라면, 현지 대학생 친구와 어울리면서 생활 적응도 빨라지고 언어나 문화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인데 이런 자리를 학교에서 먼저 주선해주다니 시작이 참 좋아보인다. (반대로 외국인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중국 본과생에게도 좋다)

관련 글
천진대 어학연수 후기 5. 중국 현지인과 교류

경험상 연수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든 현지 친구를 만날 기회는 계속 생길 것이다. 어디 교내 모임이나 동아리 같은 활동에 참여하거나 다른 친구의 소개로 연락처를 주고받는 상황도 많을 텐데, 뭐 나중 일이니 우선 당장 있는 교류회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공지를 읽은 날짜와 시간에 맞춰 유학생 수업 건물의 한 교실로 가보니 중국 학생들이 의자에 열을 맞춰 앉아 있었다. 그리고 유학생은 1~2명씩 교실 앞으로 나가 중국어로 자신을 어필했고 친구로 사귈 의향이 있는 중국 학생이 손을 들면 선착순 몇 명 선에서 매칭이 완료되는 방식이었다.

차례가 되어 교실 앞에 나가서 중국어로 자기소개를 마치자 중국 학생들이 생각하고 상의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결과적으로 이날 세 명의 중국 친구와 매칭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만난 친구들과는 반갑게 인사하고 연락처와 위챗 메신저 ID를 교환한 뒤 헤어졌는데, 이후 교내에서 생활할 때 종종 연락하고 만나기도 했다.


어학연수 시작

교류회 다음 일정으로는 앞으로 수업받을 반을 나눌 반 배정 시험이 있었다. 시험은 교실에서 중국어 읽기와 쓰기로 구성된 시험지를 푼 다음 성적에 따라 반을 배정받았고 만약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변경도 가능했다. 당시 ‘초급 I·II, 중급 I·II, 고급 I’ 5개 반이 있었는데 인터넷에 후기 글 등을 찾아보니 지금은 6개 반으로 늘었다는 것 같다. (입문 1, 초급 2, 중급 2, 고급 1)

08:00~11:40 사이 정규 수업이 끝나면 매주 이틀 정도는 초급반 – 생활 회화 / 중·고급반 – 신 HSK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6급 과정은 없다는 것 같다. 커리큘럼만을 생각했을 때 고급 2반과 신 HSK 6급 수업이 없다는 건 대련공업대 중국어 수업은 초·중급 학습자에게 좀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시험 후 고급반을 배정받아서 미리 받은 교재를 훑어봤는데 본문 내용은 잘 이해되는 편이었고, 가끔 복잡한 구조의 문장이나 모르는 어휘나 표현도 제법 있어서 공부하기에 딱 맞겠다고 느꼈다. 대련에 오기 바로 전 한국에서 신 HSK 시험 6급을 준비했던 것과 혼자 학교에 일찍 와서 공부하는 사이 중국어가 조금은 발전한 듯하다.

그렇게 다음 날이었나. 오전 10시 정도 되었을 때 모든 외국인 유학생과 중국 선생님들이 교내 도서관 강당에 모였다. 잠시 후 다소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이번 학기 중국어를 많이 배우고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자는 내용의 연설이 있었다. 이후 국적이 다른 유학생 대표 두 명이 강단에 올라와서 연수 기간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선서문을 낭독했고 도서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해산했다.

수업은 바로 다음 날 시작했는데 정규 수업은 오전 8시부터 11시 40분까지, 각 수업 시간은 40분이었던 것 같다. 당시 지내던 기숙사는 2호동이었고 방에서 나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같은 건물 6층에 올라가면 바로 교실이라서 무척 편하다고 느꼈다. 참고로 기숙사가 1호동이나 3호동이면 수업을 위해 2호동 건물까지 이동해야 하지만, 어차피 코앞이라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날 4교시 수업을 마친 후기는 우선 기숙사처럼 깨끗한 교실 시설이 마음에 들었고 과목별 수업 내용도 무척 좋아서 학교 선택을 잘했다고 느낀 것 같다. ‘이런 환경에 이 정도 선생님과 수업이면 중국어 레벨이 오르지 않는 게 이상하다’ 4교시 수업이 끝났을 때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원래 공부 스타일 대로 숙제부터 끝내고 간단하게 예습과 복습을 이어 나갔다.

중국어를 잘 공부하려고 중국에 왔으니 매일 소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다만, 이번 학기에는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너무 중국어 공부만 생각하지는 말자’이다. 저번 학기 천진에서는 최대한 한국인을 피하고 언어도 한국어는 쓰지 않으려고 했고 그 결과 혼자 방에 있을 때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중국어는 늘었을지언정,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다소 적었던 것 같아서 돌아보니까 아쉬운 마음도 들었는데, 너무 공부 위주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물론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기회가 되면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기로 했다. ‘한국인끼리 어울리면 서로 한국어만 하니까 중국어 발전에 하나도 도움 안 된다는데?!’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건 연수 기간에 스스로 공부는 하지 않고 마냥 같은 한국인끼리 어울리기만 하려고 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즉, 평소 혼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가끔 모국 학생과 어울리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히려 서로 정서가 잘 통하는 만큼, 연수 기간 타국에서 지내는 외로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 되지 않을까? 거기에 같이 공부하거나 생활 정보 공유부터 서로 중국인 친구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인 유학생과 어울린다고 해서 무슨 중국어 실력이 바로 퇴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장점이 더 많으므로 이번 학기는 마음 편하게 가지기로 했다.

학교 기숙사는 규모도 크지 않았고 교실도 나란히 붙어 있어서 설령 다른 반 학생이더라도 서로 친해지기 쉬웠다. 당시 2호동 기숙사에는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인이었는데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건너건너 친해졌고 수업 쉬는 시간에는 다른 반에 자주 놀러 가기도 했다. 스스로 한국인 유학생과도 잘 어울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보는데 안 그랬다면 이런 환경 자체가 무척 싫다고 느꼈을 것이다.


섬유소재학과 신입생 환영회

한국인 학생과 어울리는 것도 환영이었지만, 이왕 중국에 온 만큼 중국인과 어울리는 것도 무척 환영이었다. 처음 교류회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중국인 친구들과는 가끔 만나서 교내를 산책하거나 식사도 하면서 대학 생활이나 여러 주제에 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만약 한국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문화나 언어 부분이 있을 때는 반대로 잘 알려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하는 중국인 친구도 늘었는데 건너건너 소개받거나 교내에서 우연히 마주치다 친구가 된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메신저로 여러 가지 이야기했고 만날 때는 학교 안이나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 덕분에 대련 시내도 제법 여러 곳 가볼 수 있었고 때로 본과생을 대상으로 하는 신입생 환영회나 강연회에 참석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2호동 기숙사 건물 중간층에는 외부인 숙박이 가능한 호텔도 있었는데 하루는 한 친구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다른 본과생 친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가끔 시간이 맞으면 친구가 일할 때 쉬라고 배정받은 호텔 객실에 모여서 조촐한 다과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은 현지 친구 없이는 절대 알 수 없는 공간인데 지나고 보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ㅎ


기숙사 방에서

이번 글 마지막 내용으로 기숙사 이야기를 작성해 보려고 한다. 평소 교실이나 학생 식당, 서문시장, 그리고 대련 시내도 자주 나갔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당시 지낸 2호동 기숙사 방이다. 학기 초 여름에는 날씨가 더웠지만, 방에 에어컨이 있어서 외출하고 돌아오면 시원하게 지낼 수 있었다.

또한 침대나 책걸상, 옷장부터 벽걸이 TV, 미니 냉장고, 욕실 같은 시설도 준수해서 생활 환경 역시 쾌적했다고 느낀다. 그만큼 환경이 좋은 덕에 잘 지낼 수 있었고 중국어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참, 유학생들은 미리 받은 카드키를 찍고 기숙사 건물로 들어올 수 있었는데 외부인 출입 제한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중국 친구도 데려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기숙사에서 지내던 당시, 식사는 대부분 학생 식당에서 해결했고 가끔 간식 정도만 미니 냉장고에 보관했다. 주변에 직접 요리하는 학생도 있었는데 2층에 있는 공용 주방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알아보니 1호동이나 3호동 기숙사는 방마다 베란다와 개인 주방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 가격이나 기숙사 구조 같은 조건이 다르니 유학원과 상담할 때 자세히 확인하는 것이 좋다.

사진 속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다른 건물은 아마 본과생 기숙사였던 것 같다. 2호동 기숙사와 멀리 건물 사이는 공간이 꽤 되는데 이곳에 빨랫줄이 있어서 본과생들이 옷이나 이불 빨래를 널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 기준으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간이 슈퍼가 있어서 식수나 간식, 생필품 등이 필요할 때 들를 수 있었다. 또한 사진 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면 나오는 옥산(玉山)이라는 아담한 언은 중국 친구랑 가끔 산책하러 올라가기도 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