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 와서 언어 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만, 너무 공부만 하다 보면 현지 생활이 단조롭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과도 종종 어울리면 생활에도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선 매일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있다.
서로 중국어 실력도 비슷하고 같은 유학생이라 왠지 공감대가 잘 생겨 친해지는 것도 딱히 어렵지 않다. 당시 생활했던 우원 기숙사 건물 1층에 모든 중국어 교실이 있었는데 매일 같이 수업을 오가다 보면 다른 반 학생들과도 마주치면서 쉽게 친해지기도 했다.
또한 유학생뿐만 아니라 계기가 생기면 중국 대학생이나 다른 현지인들과도 만나 교류를 하는 것도 괜찮다. 현지인과 교류하면 언어도 언어지만, 역시 현지 문화를 배우거나 여러 생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좋았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한다.
교류회 참여
학기 초. 같은 반 유학생 한 명이 교내 교류회(交流会)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다름 아닌 중국 본과생들이 외국 유학생들과 국제 교류회를 주최한다는 내용이었다. 보통 1주일에 한 번 정도로 평일 저녁에 연다고 했는데 중국 생활의 새로운 활력이 될 것 같아서 참여해 보기로 했다.
며칠 뒤 교류회 당일 저녁이 되었고 시간에 맞춰 류원 기숙사 1층에 도착했다. 모임 장소였던 큰 회의실에는 이미 중국인 본과생과 유학생이 약 20~30명 모여 있길래 조금 긴장했던 것 같다. 사람도 많고 또 아직 중국어 소통도 잘 못 했기 때문인데 다행히 모두 친절했고 교류회 분위기도 좋아서 금방 녹아들 수 있었다.
교류회 활동 내용을 떠올려 보면 몇 가지 주제에 맞춰 서로 나라별 문화 이야기나 간단한 게임, 1:1 또는 소그룹 언어 교환이 주가 되었던 것 같다. 참여한 사람들의 국적이 많았던 만큼 무척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중국어를 비롯한 다른 외국어도 교환할 수 있었다.
처음 모임에 참여한 뒤부터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게 좋아져서 이후에는 거의 매번 나갔던 것 같다. (지금도 학교에 교류회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억에 4월 말 정도까지는 거의 매주 모임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5월 정도부터는 본과생들도 공부가 바빠졌는지 모임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비록 모임은 줄었지만, 그래도 이때 만나 친해진 중국 본과생이나 외국 유학생들과는 시간이 나면 학교 안이나 밖에서 따로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짧은 인연이기는 했어도 같이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 중 몇 명은 나중에 한국으로 여행하러 왔을 때 만나기도 했다.
전단 만들기
같은 반 한국 학생인 D와 G와는 제법 친해져서 중국어 공부나 현지 생활 관련 고민을 나누거나 밖에서 어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중국 친구를 구한다는 전단(传单)을 만들어 교내에 붙이기로 했다며 같이 하자고 권유받아 얼떨결에 동참하게 되었다. 추가로 설명을 들으니 나중에 프린트로 뽑아서 교내 붙인다고 했는데 노트북이 없어서 우선 노트에 내용을 써보았다.
어설프게나마 완성한 작문 노트를 찢어 G에게 건넸더니 바로 다음 날 수업에서 원고 내용을 USB에 모두 옮겨 적었다고 알려주어서 감탄했다. 이후 4교시 수업과 식사를 마친 뒤 바로 G와 D와 함께 교내 복사실로 향했고 허술한 가게 외관과는 다르게 컴퓨터 프린트 시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 뒤, 세 사람은 각자 10장 정도씩 전단을 뽑고 준비를 마쳤다.
가게를 나선 뒤에는 마치 소풍 가듯이 교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본과생 게시판에 방금 뽑은 전단을 한 장씩 붙이고 다음 게시판을 찾아 이동했다. 그렇게 대략 30분 정도 교내를 돈 끝에 준비한 전단을 거의 다 붙이고 각자 기숙사로 흩어졌다. 이렇게 한다고 실제로 연락이 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척 재미있는 경험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전단을 붙이고 하루 이틀 뒤부터 정말로 기숙사 방 전화에 신호가 울렸는데, 부족한 중국어 실력이라 수화기를 드는 손이 무척 떨린 것 같다. 결론적으로 총 세 명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두 사람과는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아서 통화는 흐지부지 종료되었다. 다행히 마지막 한 명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때도 중국어는 많이 못 알아들었고 작은 해프닝도 하나 있었다.
우선 약속 장소는 류원 앞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시간과 장소를 몇 번은 듣고 알겠다고 대답한 뒤 늦지 않게 출발했는데 마침 이때 류원 1층에서 교류회가 있었던 것이다. 순간 헷갈려서 교류회에서 만나자고 했던 걸로 대화 내용을 착각하고 교류회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약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교류회가 끝나고 다시 우원으로 돌아왔더니 어이없어하는 표정의 D와 처음 보는 중국 본과생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D의 설명에 따르면 약속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본과생은 D의 전단지 연락처로 전화해서 서로 우원에서 만났다는 것 같다. 설명을 듣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 D와 본과생에게 연신 웃으며 사과했다. 이날 이후 천진대 연수가 끝날 때까지 본과생(J로 칭함)과 여러 차례 만나면서 학교 밖 구경도 하고 중국어 한국어 언어 교환도 하면서 친구 사이로 지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J는 어느 한국 아이돌 가수를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해서 언젠가 한국에 여행 간 다음 아이돌 콘서트를 보러 가는 것이 목표라고. 그녀의 꿈을 응원하고 싶어 기회가 되면 한국어 기초를 적극적으로 알려주기도 했지만, 다소 어려웠는지 언제부터 두 사람은 중국어만으로 소통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어가 참 어설펐을 텐데 J는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고 간혹 틀리는 성조나 발음을 잘 알려주기도 했다.
J와 보내는 시간은 점점 많아졌다. 그녀의 본과 공부가 바쁘지 않을 때는 으레 만나서 교내 이곳저곳부터 시내 곳곳을 보러 가기도 했다. 어떤 때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밖에 있는 공원에 가거나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감상한 영화 제목은 ‘우리가 잃어버릴 청춘(致我们终将逝去的青春)’이었는데 자막은 있었지만, 알아듣는 대사가 거의 없어서 높은 중국어의 벽을 실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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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J와 대형 마트에서 지하 식품 코너에 들렀던 일이 있다. 그런데 음료 한 병을 집어 들더니 그 자리에서 뚜껑을 열어 바로 마셔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깜짝 놀라서 ‘아직 계산 안 했잖아’라고 바라보니 ‘나중에 바코드 보여주고 계산하면 돼’라며 여유롭게 설명해 주었다. J와 있으면 이런 식으로 중국의 문화나 생활에 관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현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무척 행운이었다고 느낀다.
아, 전단지 만들자고 제안해 준 D와 G에게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특히 G는 안 쓰는 현지 피처폰을 쓰라고 주어서 연수 기간 중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谢谢!
서점에 들렀다가
하루는 4교시 수업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천진 시내로 나와 구경하던 중 서점이 보여 들어가 보기로 했다. 딱히 살 책은 없었지만, 중국 서점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던 것 같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한국 서점과 비교하면 분위기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는데 이런저런 중국 서적을 꺼내 읽으면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한쪽에서 한국어 서적 코너를 발견하고는 호기심에 자세히 보기로 했다.
중국인이 공부하는 한국어 교재 내용은 어떨지 궁금했다고 할까? 교재를 몇 권 살펴보니 가끔 어색한 표현 한두 개 정도를 빼면 대체적인 책 구성이나 예문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 바로 옆에서 한국어 교재를 고르며 열심히 보던 현지인을 발견했다. 조금 망설였지만, 일부러 한국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혹시 중국인이세요?’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보는 여성은 마치 토끼와 같은 눈으로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대로 조금 이야기를 나눈 뒤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약속을 잡고 시내에서 만나 식사했는데 그때 서점에서 한국어로 말을 걸어서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에 다니면서 지난 5년 정도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실제로 한국인과 대화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여성의 한국어 실력이 깜짝 놀랄 정도로 좋아서 무척 감탄했다. 한국에도 가본 적 없고 한국 사람과 처음 대화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말을 잘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한국 예능 방송을 많이 봤다고 했다. 반면 독해나 문법은 약해서 공부를 좀 해볼 생각에 서점에서 한국어 능력시험 교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고 알려주었다.
이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고 이후로도 몇 번은 그녀의 친구도 불러 같이 만날 수 있었다. 식사하면서 양국의 사회와 문화, 생활 관련 이야기를 하거나 언어 교환도 조금 진행했는데 그녀의 유창한 한국어 덕분에 소통에 불편함은 없었다.
시내 서점에서 우연히 현지인을 만났는데 특히 한국어 실력이 좋아서 놀라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현지인과의 교류 기회였지만, 연수 생활에 도움 되는 부분이 무척 많다고 느꼈다. 언어가 다소 부족해도 평소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현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 상대방에게 얻으려고만 하는 대신 한국에 관해 궁금해하는 게 있을 때는 잘 알려주어야 좋은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다.
또한 학교 밖에서 현지인을 만날 때는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학교 안에서 약속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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