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 생활에 익숙해진 5월 초중순 무렵이었나. 하루는 기숙사 게시판에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당일치기 베이징 여행을 간다는 공지를 보았다. 비용은 왕복 관광버스에 중간 식사, 만리장성 입장료 모두 포함해서 1인당 약 150~200元(약 25,000~35,0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不到长城非好汉,不吃烤鸭真遗憾。(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고 북경식 오리구이를 먹지 않으면 정말 유감이다)”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HSK 시험을 공부할 때 봤던 말인데 이번 여행에 만리장성과 오리구이를 모두 포함한다고 하니 내심 기대되어 바로 신청했다.
얼마 뒤 여행 당일 오전이 되었고 시간에 맞춰 류원 기숙사 앞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이날 모인 학생은 전체 유학생 숫자에 비하면 많지는 않았는데 평소 반이 달라 거의 마주친 적 없는 다른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신청자가 다 모이자 담당 선생님은 인원과 시간을 확인했고 버스는 조금씩 학교와 천진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북경식 오리구이 맛은

중국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인 북경 오리구이(烤鸭 카오야, Peking Duck)는 과거 남북조 시대 유래되었으며 당시 궁중 음식 전문 기록서인 ‘식진록(食珍录)’에도 기록되어 있다. (명나라 1대 황제인 주원장이 즐겨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약 15세기 초, 명나라는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기면서 많은 오리구이 장인들을 데려갔고 이후 새로운 수도 베이징에서 오리구이 요리법과 맛 등이 발전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북경식 오리구이를 만드는 법은 먼저 도축한 오리의 깃털과 내장 등을 제거한 다음 팽팽하게 공기를 불어 넣는다. 이후 모양을 잡고 매달아 끓는 물을 살짝 부어 오리 껍질을 수축시키는데 이렇게 하면 구운 다음에 껍질 색깔이 살고 더욱 바삭해진다. 데친 오리는 일정 시간과 온도에 맞춰 구운 다음 채소와 소스 등을 곁들여 통째로 혹은 슬라이스를 해서 낸다.
천진시를 떠난 버스는 약 정오가 되었을 무렵 베이징의 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안에는 중국 느낌이 물씬 나는 원형 식탁이 있었고 한 명씩 자리를 잡고 둘러앉았다. 다른 반 학생이 많아서 처음에는 서로 서먹한 분위기였지만, 하나둘 요리가 나오면서 금세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날 나온 모든 요리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반응은 하나같이 호평이었다.
요리의 절정은 역시 메인이었던 북경식 오리구이였는데 먼저 슬라이스 된 고기를 한 조각 집어 맛을 보니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같이 나온 얇은 밀 전병에 얇게 채를 썬 오이나 당근 같은 채소와 오리 슬라이스를 올려 만 다음 특유의 달콤한 소스를 찍었더니 연신 감탄할 정도로 맛있었다.
참고로 중국에서 가장 역사가 긴 북경식 오리구이 식당은 ‘전취덕(全聚德)’이라는 곳으로 청나라 시대인 1864년 베이징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바이두 지도를 검색해보니 베이징 중심인 고궁박물관 주변에도 여러 곳 나오는데 베이징에 들렀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것 같다. 오리구이 한 마리가 우리나라 치킨의 두 배 정도 하는 가격은 아쉽지만, 그래도 맛은 기가 막힌다.
만리장성에 오르다

만리장성으로도 불리는 장성(长城, The Great Wall)은 유목민이나 이민족 등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은 군사 요새 시설로 그 시초는 기원전 700년경 춘추전국시대 서주(西周)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의 중국 통일 이후에도 한, 수, 당, 송, 명, 청과 같이 약 2,000년 동안 중국의 다양한 시대와 왕조에 걸쳐 건설되어 현재 모습에 이르고 있다.
장성은 만리(万里)라는 별칭에 걸맞게 10,000km를 넘는 성벽의 길이를 자랑하는데 중국 동쪽 랴오닝성 후산(辽宁虎山)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간쑤성 찌아위관(甘肃嘉峪关)에서 끝나기까지 허베이, 베이징, 지린, 산둥, 샨시, 내몽골 등 15개 성에 분포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서는 장성을 몇 개 구간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으며 팔달령(八达岭 빠다링), 금산령(金山岭 찐샨링), 가욕관(嘉峪关 찌아위관), 전북대(镇北台 쪈베이타이) 등이 관광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보존 방면으로는 일부 개발사업으로 파괴된 구간이나 방문객의 낙서 또는 성벽 벽돌 채취 같은 피해로 훼손된 구간도 적지 않은 듯하다.
카오야를 먹은 다음 버스에 올라 얼마간 이동 후 만리장성 팔달령 앞에 도착했다. 잠시 학생들과 같이 입구 앞에서 매표소 확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금만 지나면 중국의 유명한 고대 유적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 뒤 선생님을 따라 매표소를 지났고 벽돌 길을 밟으며 뒤로 끝도 없이 이어진 성벽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감탄이 나왔다.
주변 산 풍경도 풍경이지만, 특히 만 리도 넘게 펼쳐져 있다는 벽돌과 성벽 구조물을 보고 있자니 마치 중국의 2,000년 넘는 역사를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팔달령은 중국에서 유명한 관광지답게 특히 명절 같은 때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걷기도 힘들지만, 다행히 이날은 사람이 적어 학교에서 허가한 범위까지는 마음대로 걷고 주변을 감상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날 같은 반에서는 혼자만 여행에 참여했는데 다른 반 유학생들과 어울리면서 팔달령을 감상했다. 사진 속 태국 여학생들과는 평소 우원 교실 복도에서 마주치다 친해졌는데 다들 성격도 참 밝고 또 어디서 배웠는지 마주칠 때마다 한국어로 ‘오빠’라고 불러줘서 피식 웃음이 나왔었다. 지금 잘 지내는지 모르겠다.
약 1시간 정도 팔달령과 주변 산 감상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여행에 지쳤는지 천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든 학생이 많아 버스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오후 5시 정도가 되어 류원 앞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날 베이징 당일 여행도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중국에 왔으니 그래도 만리장성은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하기만 했는데, 마침 학교에서 여행을 진행해줘서 편하게 잘 다녀온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여행 생각이 있어도 막상 유학생들끼리 어딘가 멀리 이동해서 다녀오려면 언어 문제나 이동 경로 확인, 입장권 예매 같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스마트폰 번역이나 지도 같은 앱이 잘 나와 있어서 어딘가 이동하는 것도 예전보다는 쉬워진 것 같다. 중국이든 다른 나라든 어학연수 가서 언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여유가 있을 때 관광지나 유적지에도 많이 방문해서 좋은 추억을 남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