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대 어학연수 후기 7. 중국어 말하기 대회

5월 중순~말 정도가 되었을 때 학교에서 중국어 말하기 대회(演讲比赛) 소식이 들려왔다. 원하는 학생은 누구든 참여하면 된다고 해서 고민 없이 신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해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중국어 실력도 오를 거라 생각해서였다.

대회는 참가자마다 원고를 준비하고 A~D반, E~G반으로 그룹을 나눠 한 명씩 연설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 스피치 대회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각자 자신을 소개하는 간단한 영상이나 사진을 만들어 파일로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내심 당황했다.


천진대 어학연수 후기 7. 중국어 말하기 대회
말하기 대회

당시 피처폰을 제외하면 카메라나 노트북, USB 같은 기기가 하나도 없어서 뭘 만들래야 만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개 영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도 썩 내키지 않았고 다른 학생에게 디지털 기기를 빌리는 것도 왠지 번거로워서 결국 아무것도 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연설 원고만큼은 알고 있는 최대한의 어휘로 정성 들여 작성했고 담임 선생님에게 교정도 부탁드렸다. 앞으로 대회까지는 약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고 매일 기숙사 방에서 일정 시간을 들여 원고를 외웠다. 그러는 사이 벌써 대회 당일이 되었는데 오후 시작을 앞두고 오전에 J와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외운 원고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원고를 본 J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표현이 아주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교내 빈 강의실로 이동해 그 자리에서 노트 한 장을 찢어 기존 내용을 바탕으로 새 원고를 써주었다. 확실히 이전 원고보다 고급 단어와 표현이 늘었고 분량도 길어졌지만, J와 헤어지고 막상 기숙사로 돌아온 뒤에는 막상 두 원고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부족해도 지금 바로 말할 수 있는 기존 원고가 좋을까? 아니면 J가 즉석에서 써준 업그레이드 버전의 원고를 새로 외울까?’ 결국 J로부터 받은 원고를 선택했고 새로운 내용을 필사적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도 찾아가면서 최대한 원고 내용을 다 외웠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이제 대회까지도 약 1시간이 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대로 새 원고를 들고 기숙사를 나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대회 장소인 류원에 도착했다. 대회장 안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는데 유학생뿐만 아니라 본과생 외국 학생도 있었고 처음 보는 중국인 선생님들도 보였다. 곧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의 개막 인사와 함께 말하기 대회는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먼저 A~D반 학생들이 한 번에 무대로 나와 객석에 인사했고 곧 한 사람씩 대형 스크린으로 소개 영상 방영 후 중국어 말하기를 시작했다. 관객석에서 조금 전 새로 외운 원고 내용을 떠올리느라 연설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어느새 거짓말같이 참가자의 연설이 모두 끝났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이번에는 E~G반 학생들이 한 번에 무대로 올라와 한 명씩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간단하게 인사했다. 여전히 원고 내용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정신없었는데 어찌어찌 떨리는 심정을 누르고 애써 웃으며 인사했던 것 같다.

이후 자리로 돌아와 한 명씩 발표를 시작했는데 다들 영상도 잘 준비했고 중국어도 유창해서 왠지 마음이 위축되어 갔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무대 위에 올라와 있었고 일단 심호흡부터 한 뒤 관중석에 인사했다.


천진대 어학연수 후기 7. 중국어 말하기 대회
이렇게 굳어버렸다

관중석이 조용한 가운데 소개 영상 없이 바로 첫 문장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잘 말한 건 딱 여기까지다. 급하게 외운 내용이 탈이 난 건지 두 번째 문장부터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혼자 굳었고 바로 식은땀이 흘렀는데 결국 긴장한 상태로 원고를 보고 그대로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한 번씩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보았지만, 어째 무심한 표정이 많아서 왠지 더 긴장되었고 원고를 읽는 시간도 매우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원고 읽기를 마친 다음 관중석에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박수는 받았지만, 자리로 돌아오니 기진맥진한 상태가 돼서 다음 참가자들의 유창한 연설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것 같다.

대회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뒤에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결과적으로 퍼포먼스도 좋지 못했고 기분도 우울해져서 공부나 외출 의욕이 떨어져 버렸다. 새 원고 내용을 급하게 외우느라 제대로 말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래도 원고를 써준 J에는 고마웠다. 만약 일주일 전부터 J를 만났다면 이날 결과는 크게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


말하기 대회 준비 팁

짧은 시간에 제법 어려운 어휘나 표현이 있는 원고를 외우느라 좋은 발표는 못 했지만, 그래도 느낀 바가 있어서 대회 준비 팁을 작성해 본다. 대회를 준비한다면 역시 처음에 좋은 원고를 작성해서 내용을 모두 외워두어야 한다. 연수 중이라면 선생님에게 원고 교정도 부탁해 보자.

작성한 원고 내용을 외울 때는 꼭 소리를 내서 진행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실제 대회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 좋은 말하기를 생각한다면 반 선생님이나 중국인 친구에게 발음이나 성조 확인을 부탁하는 것도 추천한다. 보통 선생님이라면 공부 의욕이 높은 학생을 선호해서 이럴 때 여러 번 찾아가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내용을 말할 때 조금은 과장되게 감정을 넣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면 자신도 모르게 표현에 생동감이 생겨 듣는 사람에게 더 잘 와 닿기 때문이다. 또한 말을 할 때 거울을 보고 표정이나 동작을 점검하면 조금 더 자연스러운 말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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