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UCK CALL 덕콜
원제 – ダック・コール (1991)
저자 – 이나미 이쓰라 (稻見一良)
옮긴이 – 박정임
발행 – 피니스아프리카에 (2019)
페이지 – 343p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이제 갓 취업을 한 일러스트레이터 청년은 어느 날 강가에서 캠핑을 하는데 멀리서 이상한 남자를 발견한다. 아버지뻘은 되어 보이는 육중한 체구의 이 남자는 아까부터 끊임없이 강가의 돌을 집어 올려 관찰한 뒤 다시 내려놓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청년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다짜고짜 물어본다.
남자는 그런 청년에게 무심한 듯 고개를 돌려 ‘적당한 돌을 골라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라고 답했는데 청년의 전공이 바로 그림 아니겠는가? 그림을 보여달라는 청년의 망설임 없는 요구에 남자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침 비가 쏟아져 두 사람은 청년의 캠핑카로 이동한다. 자리에 누운 남자는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고 남자의 가방을 열어 본 청년은 매우 놀라게 된다.
가방 안에는 갖가지 돌이 가득 있었고 각 돌에는 다양한 새 그림이 저마다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청년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전공과 관련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회사에 취직했다고는 하지만 스스로 원하지 않는 ‘그림 일’을 하는 자신에게 있어 남자가 돌 위에 그린 새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청둥오리, 자고새, 꿩, 물새.. 분명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은 그림이었지만, 청년에게는 마치 이상과도 같은 혹은 자신을 꿈속 세계로 데려가는 듯한 그런 새들이었다. 청년은 자리에 누워 돌 위에 그려진 새들을 멍하니 감상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고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청년이 꾸는 여섯 가지 꿈)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야기 1. 망원 望遠
CM 제작사에 취업한 젊은이는 지난 3년간 자기 팀과 같이 촬영해 온 영상의 마지막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다. 다음 날 새벽 젊은이는 홀로 침낭에서 일어나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찍을 준비를 한다. 카메라 위치 등은 전날 세팅을 마쳤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카메라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태양이 떠오르기까지 약 5분. 청년은 긴장한다. 그런데 마침 그때 청년의 눈앞에 어떤 기이한 존재가 나타났고 청년은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로 하는데..
이야기 2. 패신저 Passenger
샘은 비둘기를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그날은 어쩌다 보니 자신의 이웃 마을 숲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처음 보는 신비로운 비둘기를 발견해 사냥했다. 하지만 놀라기는 이르다. 곧 신비로운 비둘기가 몰려와 숲을 덮었는데 이웃 주민들 역시 총을 들고 몰려와 비둘기를 학살하기 시작한다.
‘왜 학살했을까?’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주민들이 사라진 뒤 마침내 그 이유를 알게 된 샘은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 자신의 마을에 도착해 가까운 친구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야기 3. 밀렵 지망자 密獵志望者
지병을 얻고 회사에서 은퇴한 ‘나’는 소망이었던 캠핑카를 사서 숲속 캠핑을 시작한다. (거주하는 집도 따로 있다) 그 무렵 숲에서 우연히 히로라는 초등학생을 만났는데 히로는 새총으로 새를 잡는 데는 전문가였다.
‘새 사냥’을 매개로 나와 히로의 사이는 가까워졌는데 마침 숲 한 가운데 커다란 성벽과 요새를 지어놓고 대량의 오리를 가두고 지내는 백작 혹은 부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마음이 통한 둘은 기묘한 방법으로 부자를 골탕 먹이기로 한다.
이야기 4. 위퍼 월 whipper wall
어느 죄인 수용소에서 흉악범 넷이 탈옥한다. 이들은 각자 살상 기술을 무장하고 있어 다시 잡아 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주인공 경찰들은 주저하지 않고 이들을 찾아 나섰다. 제각각 흩어진 죄인 셋을 찾아낸 경찰들은 피해도 감수하며 가까스로 이들을 잡는 데 성공한다.
‘오키’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아 나선 흉악범이다. 경찰들은 산중에서 끝내 오키를 찾아내지만, 그의 특별한 이유에 공감하며 어떤 결정을 내린다.
이야기 5. 파도의 베개 波の枕
어느 어두운 밤, 불타는 어선에서 바다에 떨어진 겐조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생존의 위협에 두려움을 느낀다. 주변에는 동료도 없었고 그 흔한 널빤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 혼자 남은 겐조는 저멈 날이 밝아지면서 체력도 떨어져 갔고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나타난 거북이와 새가 거짓말같이 겐조를 육지로 이끈다. 이것은 어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겐조는 계속 꿈을 꾸는 것 같다.
이야기 6. 디코이와 분타 デコイとブンタ
사냥꾼이 오리를 사냥할 때는 디코이(Decoy – 미끼)라고 하는 모형 오리를 오리 무리 뒤쪽에 풀어놓는다. 오리들은 디코이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무리를 지어 앞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기다리고 있던 사냥꾼에게 잡히고 만다. 여기 자의식이 있는 어느 버려진 낡은 디코이가 있다.
소년 분타는 숲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디코이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데려와 정성스레 다듬고 물감칠을 해주는데, 놀이공원에 향한 둘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경험을 한다.
감상
<덕콜>은 수채화부터 그림동화(혹은 잔혹한 동화), 거칠고 냉담한 감정이 공존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여섯 단편 이야기는 야생동물과 자연이라는 공통점이 관통하고 있는데 때로는 투명하고 부드럽게, 또 때로는 거칠고 야만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각 단편 이야기의 시대 배경이나 등장인물 그리고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소설 제목에도 나오는 오리(새)라는 요소가 매번 등장한다. 이 오리(새)야말로 독자를 환상적인 이야기로 이끄는 매개체가 된다.
소설 제목이 덕콜인 이유는 우선 ‘덕콜’은 오리를 부르는 피리이다. 작품에서 덕콜이 직접 언급된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오리(새)는 이야기마다 등장한다. 오리의 등장을 보는 것은 어쩌면 ‘소설을 감상하는 독자가 책 페이지를 넘기며 직접 오리를 (DUCK) 부르는 (CALL) 듯한 경험을 하는 것’으로 보고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데 다소 주관적인 해석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한편 소설은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아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이다. 네 번째 이야기 ‘위퍼 월’처럼 거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여섯 이야기를 통틀어 야생동물과 자연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는 빠지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이 소설은 단순히 평화로운 힐링 소설인가?’라고 묻는다면 조금은 결이 다른 작품이라고 대답해주고 싶다.
그런 평화로운 면도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냥과 밀렵이라는 요소가 있어 긴장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소설이 대단히 몰입감이 뛰어나거나 박진감, 재미가 넘치지는 않는다. 조금 몽환적이라고 할까. 1991년에는 일본의 문학상인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니 관심 있다면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