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
원제 : 午後の曳航/獸の戱れ (1963/1961)
저자 : 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옮긴이 : 박영미
발행 : 문학과지성사(2022)
페이지 : 386p
목차
오후의 예항
제1부 여름
제2부 겨울
짐승들의 유희
서장
제1~5장
종장
옮긴이 해설
작가연보
기획의 말
오후의 예항 줄거리
일본으로 서구 문물이 한창 들어오던 무렵(19세기 중순~), 요코하마의 모토마치에는 5년 전 남편을 잃고 13살 아들 노보루를 홀로 키우며 고급 양품점을 운영하는 미모의 과부 후사코가 있다. 노보루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기며 세상을 비딱하게 바라보고 어른들을 비판하는 조숙한 소년이었는데 그런 노보루에게도 바다만큼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노보루는 어머니 후사코를 따라 대형 선박을 견학하러 가게 된다. 선박 안내를 담당한 건 류지라는 이등항해사 남성이었는데 후사코는 이를 계기로 그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노보루는 마음 속으로 전세계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류지를 자신의 영웅으로 생각하게 된다.
류지와 후사코의 관계는 발전하더니 급기야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노보루는 자신의 바다 영웅이던 류지가 점차 육지인의 생활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했고 같이 어울리던 소년들에게도 고민을 털어 놓는다. 이에 무리 중 가장 똑똑한 대장은 그런 노보루와 나머지 소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는데..
짐승들의 유희 줄거리
도쿄 긴자에서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서양 도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잇페이는 세련된 지식인이자 번역된 문학작품 평론가로 독자층에서 제법 명성도 얻고 있었다. 하루는 방학 동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고지에게 자신의 아내 유코는 그에게 어떤 질투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거침없이 다른 여성들과의 외도 사실을 자랑 삼아 늘어 놓게 된다.
고지는 내심 잇페이의 뻔뻔한 태도를 경멸하는 동시에 아직 얼굴도 본 적 없는 유코에 대해 연정을 품게 된다. 고지의 시선에서 잇페이는 그저 환경을 잘 타고나 자신감이 과잉되었으며 아내에게 무척 소홀한 형편없는 남성일 뿐이었다. 이후 어떤 계기로 고지는 유코를 만나게 되고 감정은 더 깊어지더니 마침내 그녀를 잇페이의 불륜 현장에 데리고 간다.
네 사람은 아파트 안에서 각자 다른 세 사람을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 한 사람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을 하지 못했다. 마침내 긴 침묵이 깨졌고 감정의 뒤틀림은 폭풍처럼 나타나 예상 못한 잔혹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잇페이와 유코, 고지 세 사람은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는데..
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 감상
소설을 읽은 감상을 정리해 보면, 이 책은 일본 전후 탐미주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적도 있는 故 미시마 유키오의 <오후의 예항(1963)>과 <짐승들의 유희(1961)>라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은 책이다. 따라서 두 이야기 간에 연속성은 없으며 각자의 세계에서 독립된 이야기가 전개된다.
먼저 <오후의 예항>은 대단히 잔혹한 소설이라고 느꼈다. 13살 노보루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어른들이 만든 세계를 부정하고 가벼운 작당을 모의하는 모습은 그 나이 또래라면 충분히 가능한 생각과 행동이다. 하지만 제2장 ‘겨울’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소설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가 끊임 없이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점점 가속도가 붙는 모습이랄까.
즉 노보루와 친구들이 어른들의 세계와 가치관을 부정하고 이상을 꿈꾸는 모습은 그저 13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꾸러기 장난 정도가 아니라 이 소년들 세계에서는 굉장히 진지한 일과 같다. 한때 바다의 영웅이었지만, 자신들이 싫어하던 육지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류지를 보며 현실을 부정하고 정신적인 이상을 추구하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작품의 제목인 ‘예항(曳航)’은 작은 배가 큰 선박을 항구로 이끈다는 뜻으로 마치 ‘작은 소년’인 노보루와 친구들이 ‘커다란 어른’인 류지를 자신들의 세계로 이끄는 모습이 연상 된다. 작가는 소년들과 어른, 이상과 현실이라는 요소가 이야기 끝까지 대립하는 모습을 섬세하면서 잔혹한 문체로 표현하는데 무심코 읽은 소설에 굉장한 충격을 받은 느낌이다.
참고로 <오후의 예항> 이야기 마지막은 열린 결말로 되어 있어서 독자는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결말을 상상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매우 불쾌한 결말이 될 수 있고 반대로 어떤 희망적인 반전을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대체로 전자의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음 편 이야기 <짐승들의 유희>부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잔혹함의 정도 또한 심하지 않다. 대신 이 이야기에서 돋보이는 점은 잇페이, 유코, 고지 세 주인공의 기묘한 동거를 계기로 섬세하고 복잡하게 진행되는 인물 심리 묘사이다.
세 사람은 한때 정말 사이가 가까웠고 또 서로 강렬하게 사랑하고 증오했지만, 이제 죄책감과 후회의 감정이 더해져 평범하고 편안한 일상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그래서 이전만큼 격렬한 감정도 줄었고 다소 무뎌진 모습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잠시 옮긴이의 해설을 인용하면 세 사람의 질투나 애정, 증오 등을 계산하지 않는 감정 상태의 어울림이야 말로 마치 순수한 짐승들의 유희와도 같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제목 <짐승들의 유희>는 사고 이후 인물들의 순수해진(?) 어울림을 상징하면서도 한편으로 세 사람이 동거 이전에 보였던 격렬한 감정 부딪힘과 마찰, 갈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짐승들에게 야생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이 있는 것처럼 주인공 인물들에게도 난폭하고 거친 감정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물들의 순수하면서 거친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돼서 제목도 참 기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참고로 작가는 생전에 많은 소설과 희곡 작품을 남겼고 그 중 일부가 외국에도 번역되어 소설이 출간되거나 오페라, 영화 등으로 만들어져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 오후의 예항 : The Sailor Who Fell from Grace with the Sea, 1965 (바다의 은혜에서 추락한 뱃사람)
하지만 작가가 일본 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외치다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 우익 사상 인물이라 그런지 한국에서는 그리 작품이 읽히지 않는 듯하다. (작가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이번 독서를 시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일찍이 故 박경리 작가는 ‘얄팍한 로맨티시즘의 한계는 죽음에 이른다’라며 일본 미학의 가벼움을 혹평하기도 했다는데, 그래도 소설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읽고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