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비틀 Maria Beetle(마리아 딱정벌레)
원제 – マリアビートル (2010)
저자 – 이사카 코타로
옮긴이 – 이영미
발행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9)
페이지 – 664p
* 소설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직 킬러 기무라는 자신의 6살 아들을 옥상에서 떨어트려 중상을 입힌 중학생 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쿄에서 모리오카로 향하는 신칸센에 올라탄다. 비장한 각오로 총까지 들고 열차에 오른 후 왕자를 발견했지만, 되려 영악한 왕자의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만다.
왕자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하게 기무라를 제압하고 의기양양해 있던 시각, 열차에는 현직 킬러 레몬과 밀감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조직 보스 미네기시의 의뢰로 상대 조직에 납치되었던 그의 아들을 데리고 인질 목숨값이 들어있던 트렁크를 챙겨 열차에 올라탄 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차량 짐칸에 놓아둔 트렁크는 사라져 버렸고 종착역까지 보호해야 하는 보스의 아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눈앞의 이해 안 가는 상황에 레몬과 밀감은 크게 당황한다.
한편 같은 시각 열차에서는 누군가로부터 또 다른 임무를 의뢰받은 현직 킬러 나나오가 등장한다. 그의 임무는 다름 아닌 레몬과 밀감이 가지고 온 트렁크를 빼앗아 열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도쿄역을 떠난 신칸센 열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역인 우에노역에 도착했다. 무사히 트렁크를 탈취한 나나오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누르고 내리려고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인해 결국 내리지 못한다. 자신에게 불운이 따르는 것 같다며 좌절하는 나나오는 이 상황을 넘기고 다음 역에서 내리고자 하는데..
다시 기무라의 시점. 정신이 드니 졸지에 신칸센 열차 좌석에 손과 발이 묶인 인질이 되어 있었다. 그의 옆자리에는 여태껏 그렇게 복수하고 싶었던 사이코패스가 틀림없는 왕자라는 이름의 중학생이 있었고 태연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기무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이미 왕자는 기무라가 자신에게 올 것을 알고 미리 함정을 만들었고 또 언제든지 기무라의 아들에게도 손을 쓸 수 있도록 업자(킬러)를 고용해 두었기 때문이다. 마침 왕자는 열차에서 우연히 밀감과 레몬의 트렁크를 발견하고 흥미로운 일을 꾸미기로 하고 아들이 인질로 잡힌 기무라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속으로 내달리는 신칸센 열차 안에 전현직 킬러들과 사이코패스 왕자가 올라타 있다. 이들은 복수를 꿈꾸거나 조직의 의뢰를 완수하거나 혹은 재미있는 일을 벌이려는 등 서로 다른 목적이 있는데 과연 목적을 이루고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가 될 것인가?
킬러 시리즈 3부작 중 마지막으로 읽은 <마리아비틀>은 (사실 킬러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 한마디로 말하면 굉장했는데, 먼저 개성이 정말 강하고 각자 목적이 뚜렷한 주인공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하는 점이 재미있었다. 또한 달리는 신칸센이라는 속도감 있고 한정된 공간에서 주요 인물들이 차츰 서로 얽혀가며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무는 이야기 전개가 대단히 인상적이고 흥미로웠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비중 있는 주연이기 때문에 누가 누군가의 조연 역할을 한다거나 단순히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게 하기 위한 부수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야기 전개 중에 동시다발적이거나 연쇄적으로 예상 못한 사건과 사건이 일어날 때도 뭔가 억지로 설정했다는 부자연스러운 느낌보다는 ‘와,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라며 상황을 납득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인물과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
<마리아비틀>은 킬러 시리즈 3부작 중 가장 페이지 분량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많은 페이지 분량에도 전체 이야기 구조나 전개는 치밀하고 기상천외한 데다 작가 특유의 유머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정도 분량이면 어딘가 한두 군데 빈틈(?)이 있어도 괜찮을 법한데 그런 부분이 있었는지 인지하지 못한 걸 생각해 보면 소설 원작과 번역의 완성도가 매우 뛰어나다고 느낀다. 그 덕에 작품은 지루할 틈도 전혀 없이 몰입해서 다 읽을 수 있었다.
앞서 읽은 킬러 시리즈 두 작품은 킬러라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들을 통해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이나 인간군상의 다양성을 묘사한다고 느낀 바 있는데, <마리아 비틀> 역시 그 틀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작가가 이번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본문에서 왕자가 열차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묻는 이상한 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 되나요?” 어쩌면 왕자는 사이코패스이기는 해도 아직 중학생이니 그저 중2병 나이에 맞는 질문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굉장한 오산이라는 걸 알아두어야 한다.
왕자는 정말로 살인을 즐기는 순도 100%의 사이코패스로 지나치게 똑똑한 머리를 오직 자신의 유흥거리를 위한 연구에만 활용한다. 정말이지 가끔 범죄를 저지르고 뉴스에 나오는 촉법소년들은 저리 가라 할 만큼 왕자는 악마와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사람을 죽이는 프로 킬러들이 사이코패스 중학생 왕자를 만나면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무너진다는 점이다. (불쌍한 기무라는 소설 시작부터 왕자의 인질이 된다)
사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도 나쁜 악마와 같은 인간들인데 그런 킬러들이 왕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는 건 <마리아비틀>에서는 왕자야말로 킬러들을 뛰어넘는 진정한 악마이며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 중반 정도부터는 어쩐지 왕자의 사악함에 질려 어느새 킬러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작품을 읽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다. ‘왕자의 비참한 결말을 반드시 보고 싶다’와 같이 말이다.
다행히 등장인물들도 독자의 마음을 아는 건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왕자에게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마리아비틀>이 말하려는 내용인 듯하다. ‘진정한 악에 대응하고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작품은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 특유의 재치 있고 유쾌한 방식으로 이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은 뒤에는 여운이 조금 길게 남았던 것 같다. 일단 내용이 매우 재미있었고 또 소설 전체 메시지도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사카 고타로 킬러 시리즈 3부작 중 <그래스호퍼>, <악스> 역시 무척 재미있는 소설임은 틀림 없지만, <마리아비틀>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꼈는데 아직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비틀>은 불릿 트레인(Bullet Train – 탄환 열차)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 22년도 8월 중 개봉한 바 있다. 장르는 코미디 액션이고 무려 브레드피트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미국식 개그 요소에 신비로운 이미지로 포장한 일본 사무라이 조직이 나오는 모습은 원작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그래도 액션신이나 CG 완성도가 상당해서 킬링타임으로는 제격이지만, 원작 소설이 훨씬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