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1984> 리뷰. 텔레스크린이 감시하는 세상


1984

원제 : 1984(Nineteen eighty-four) (1949)
저자 :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옮긴이 : 김순녀
발행 : 청목 (2000)
페이지 : 334p


1984 줄거리

세계는 핵전쟁 이후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 3개의 초강대국 나뉘어 서로 끊이지 않는 동맹과 배신, 전쟁을 벌이며 대립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의 주 무대인 오세아니아(영국)는 당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대형)의 통치 아래 나라와 개인의 가정에 ‘텔레스크린’을 설치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거대 사회주의 체제 국가이다.

텔레스크린은 현대의 TV와 유사하지만, 영상과 소리를 서로 전송할 수 있는 점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당의 선전 영상 외에는 볼 수 없는 반면 자신의 모든 생활 영상과 소리는 당에 전송된다. 스크린은 소리를 줄일 수는 있어도 아예 끄는 것은 불가능해서 사실상 24시간 당에 감시를 당하는 것과 같다.

외부(하급) 당원이자 진리성 기록관리국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역사마저 날조하는 당의 체제의 의구심을 품고 자기 집에서 금지된 행동을 하는데. 그건 바로 텔레스크린의 시야가 닿지 않는 구석에서 얼마 전 한 잡화점에서 구해온 노트에 일기를 쓰는 것이다. 당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국민들이 전쟁에 열광하게끔 세뇌하고 있다. 또한 영어를 바탕으로 만든 신어(NewSpeak, 新語)의 도입을 통해 이전 언어인 구어(OldSpeak, 久語) 사용을 줄이면서 당은 사람들의 사고와 언어마저 통제하려고 한다.

한편 당에 소속된 당원들은 하루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2분간 진행되는 ‘증오 주간(2분간 증오)’에 참여해야 한다. ‘증오 주간’은 빅 브라더에게 반기를 든 반역자 골드스타인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에 나타나면 모두가 분노를 표해야 하는 의식을 말한다. 증오 주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윈스턴은 마음속으로 공공의 적인 골드스타인이 아닌 빅 브라더에게 분노를 표하고 오히려 골드스타인이 이끄는 빅 브라더 대항 세력인 ‘형제단’의 실체를 궁금해한다.

이후 윈스턴은 어떤 계기로 인해 같은 외부 당원인 줄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당에서는 출산을 제외한 이성 간의 사랑은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당의 감시를 벗어난 곳에서 밀회를 즐겼고 얼마 뒤에는 내부(상급) 당원인 오브라이언으로부터 형제단의 정보를 제공받기에 이른다. 이대로 가면 사랑도 지키고 형제단에 가입해서 빅 브라더에게 저항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들을 계속 감시한 사상경찰에 의해 윈스턴과 줄리아는 당에 체포되고 마는데..


1984 감상

애초에 <1984>에서 당이 주장하는 전쟁은 국가 지배와 체제 유지를 위한 일종의 수단이자 허상이다. 3개의 강대국이 대립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맞지만, 사실상 이렇다 할 큰 침략이나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당은 여전히 전쟁이 한창이라며 국민들에게 거짓 정보를 뿌리고 선동하면서 전시체제의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당이 말하면 2+2는 4가 아니라 5가 되는 것이고 어제까지의 적국도 하루아침에 동맹국이 되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전 역사는 즉시 폐기되고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여김) 당은 국민들로 하여금 당이 어떤 말을 하든 무조건적 믿는 ‘이중사고’를 가질 것을 생활 원칙으로 강조한다.

여기에 24시간 감시를 멈추지 않는 텔레스크린과 도청장치, 사상경찰을 더하면 국민은 그저 전체주의 체제 지속을 위해 존재하는 부속품과도 같고 어떤 자유도 누릴 수 없다. 텔레스크린은 심지어 잘 때도 감시를 멈추지 않는데 누군가 잠꼬대로 체제에 반하는 소리를 하더라도 사상범으로 체포할 정도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사상문제로 체포되는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고 하여 ‘증발했다’고 표현한다.

이런 상황에서 빅 브라더에게 반기를 들었던 윈스턴과 줄리아는 아쉽게도 당에 체포되면서 소설 후반부인 3부의 이야기 역시 대단히 비참하게 흘러간다. 이들은 장기간 끔찍한 고문과 세뇌를 당하는 과정에서 긍지와 신념을 잃어버렸고 결국 서로를 배신하며 당이 바라는 모습이 되어 버린다. 결국 아무도 그 실체를 본 적 없는 빅 브라더는 승리하고 윈스턴과 줄리아는 껍데기만 남아서 회색빛 도시에 물들어간다.

물론 이들은 실패하고 당이 바라는 인간으로 거듭나지만 이들의 존재야말로 소설에 등장하는 유일한 희망이자 정의로운 인간의 의지를 상징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공포와 억압이 지배하는 회색빛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통해 불굴의 의지를 담은 인간 저항 정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발표된 시점은 1949년으로 이미 100년 가까이 흘렀지만 어쩌면 지금 우리는 <1984>의 빅 브라더가 감시하는 세상에서 사는 건 아닌지, 얼마나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미 어디를 가든 CCTV는 기본으로 있고 인터넷과 전화는 늘 해킹과 도청의 위험이 따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현실 속 모든 요소를 텔레스크린에 비유하는 것은 조금 과장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은 여전히 현실 속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와 정신을 유지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 경이롭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