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클로이> 인생에 우연이 찾아온다면

그녀, 클로이 인생에 우연이 찾아온다면. 책 표지


그녀, 클로이

원제 – A Women Like Her (2020)
저자 – 마르크 레비 (Marc Levy)
옮긴이 – 이원희
발행 – 작가정신 (2020)
페이지 – 344p

* 소설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 5번가 12번지에는 붉은 벽돌 외관을 한 어느 오래된 9층 아파트가 있다. 고급아파트가 많은 맨해튼 거리에서 이 아파트의 독보적인 특징이 있다면 여전히 수동 방식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는 점이다. 말 그대로 사람이 직접 조작해야 움직이는 엘리베이터인 것인데, 인도에서 온 디팍이 39년째 승무원으로 조종을 맡고 있다.

디팍은 엘리베이터를 조종하면서 아파트 주민과 매번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성격과 생활패턴을 자세히 파악하는 등 최상의 탑승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베테랑 승무원이다. 오래전, 인도에서 만난 사랑인 랄리와 집안의 반대로 쫓기듯이 미국으로 건너와 결혼했지만, 엘리베이터 승무원 직업 덕분에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한편 영국에서 유학한 뒤 인기 모바일 앱을 개발하고 사업 확장과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에 방문한 산지는 가장 먼저 이스트 할렘에 거주 중인 고모(랄리)와 고모부(디팍)를 찾아온다. 생애 첫 만남이라는 어색함도 잠시, 랄리는 조카인 산지에게 집에서 머물길 강하게(?) 권하고 산지는 어쩔 수 없이 랄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고모와 고모부의 낡은 집은 원래 머물기로 한 뉴욕 중심의 호텔보다는 당연히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 그래도 심성이 곧은 산지는 친척 어른 두 분을 실망 시키지 않으려 애쓰면서 다음 날부터 친구이자 사업 동반자인 샘과 같이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닌다.


멀리 고국 인도에서 생면부지의 조카가 집에 와서 머문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래도 디팍과 랄리의 삶은 이전과 다름없이 평온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디팍의 야간 업무 교대 파트너인 리베라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야간 승무원이 없다니! 주민들은 리베라를 걱정하면서도 빠른 해결을 원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오가는 상황에서 평소 디팍으로부터 아파트와 엘리베이터 이야기를 들어왔던 아내 릴리가 조용히 나선다. 바로 조카 산지에게 잠시만 리베라의 일을 맡기는 것이었다. 산지와 디팍 모두 내키지는 않지만 동의했고 그렇게 산지는 고모부의 특훈을 받고 나서야 야간 엘리베이터를 조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산지는 얼마 전 우연히 밖에서 만난 휠체어 여성 클로이와 다시 아파트에서 만나고 그녀가 이곳 9층 주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걸까? 잠시 생각에 빠진 산지는 다시 밤에는 승무원으로, 낮에는 유망한 앱 개발자로 돌아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고자 하는데.

이후 애석하게도 아파트에서 연달아 사건이 터지고 산지와 디팍, 랄리를 포함한 아파트 주민 모두는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을 겪어야 한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산지는 목표했던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리베라도 일에 복귀해야 하는데 디팍과 랄리, 아파트 주민들 모두 평온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우연은 정말 찾아 오는가

그녀, 클로이> 인생에 우연이 찾아온다면. 우연이 찾아온다면
우연이 찾아온다면

<그녀, 클로이>는 우연히 일어난 일로 상황은 최악을 향하지만, 결국 새로운 우연이 찾아오면서 소설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은 일어나지만, 휴먼 로맨스 코미디 소설 장르 답게(?) 인종과 계급, 문화 등의 가치관과 차이를 뛰어넘는 유머와 사랑, 감동을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소설이 행복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문득 다름에 관한 편견에 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작가는 미국 배경 소설에 의도적으로 미국인과 인도인을 같이 배치하였고 독자는 등장 인물들의 다름으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관찰하게 된다. (거기에 ‘주민’과 ‘엘리베이터 승무원’이라는 명백히 다른 신분도 설정했다)

아파트에서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은 그들을 위해 40년 가까이 일한 디팍과 임시 야간 승무원을 맡은 그의 조카 산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건 어쩌면 현실 속 사람들의 차가운 면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평소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클레이와 그의 아버지도 있다) 그래서 조금 묘하다. 유머도 있고 감동도 있는 해피엔딩 소설이지만, 숙연한 기분이 들면서 생각할 여운도 남는다.

이따금 인생엔 늦게 오는 것들이 있어요.
중요한 건 결국 오기 마련이라는 거죠, 안 그래요?


한편 소설 리뷰 글을 작성하면서 정작 주인공 이야기는 빠트린 것 같다. 주인공 클로이야말로 소설에서 가장 극적인 인생의 변화를 맞이하는 캐릭터이다.

그녀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가 끔찍한 폭탄 테러로 두 다리 40센티미터를 잃어버렸다. (애석하게도 이 사건은 2013년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휠체어에 올라탄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그녀에게는 최악의 불행과도 같은 일이었다. 많은 택시가 그녀의 손짓을 외면했고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는 주변에 사람이 많아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특히 리베라의 부상으로 엘리베이터 승무원이 없을 때는 누가 자신과 휠체어를 1층으로 옮겨주지 않는 이상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마치 맨해튼 아파트 9층이 그녀의 모든 세상과도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만난 인도인 산지와의 인연은 그녀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어 나간다.

더 자세한 소설 내용은 작성하지 않겠지만, 그녀에게 찾아 온 우연은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우연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연이란 분명히 찾아오지만, 때로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삶에 좌절하던 클로이가 결국 다시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 우리도 조금 더 일상에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Leave a Comment